위암 '性差의학' 주목
3기 이상 생존율도 상대적 떨어져
혈액검사로 발병 위험 추정 가능
암 연구에 ‘성차(性差) 의학’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성차 의학은 남녀에 따라 질병의 발생 기전과 양상, 예후에 근본적 차이가 있는 만큼 치료 등에서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학문적 조류다. 암 역시 성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남녀의 발생 패턴이 다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최근 해외 유명 암학회 논의 주제를 남녀 차이에 할애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차 의학에 기반해 한국 남녀 위암 발생의 특성을 규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여성 위암 환자는 남성에 비해 진단이 어려운 ‘미만형’ 비중이 높고 3기 이상에서 남성보다 예후가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위암 환자의 사망 원인도 남녀 차이를 보였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팀은 위암 판정 및 수술을 받은 환자 2983명을 분석해 남녀에 따른 병태 생리학적 차이를 밝혀내고 이를 세계소화기학저널 최신호에 보고했다.
위암은 형태에 따라 ‘장형’과 ‘미만형’으로 나뉜다. 장형은 암세포가 한 곳에 모여 덩어리로 자라기 때문에 위내시경 검사로 발견이 쉽다. 반면 미만형은 깨알같이 작은 암세포가 위벽을 파고들면서 넓게 퍼지며 자라는 위암으로 내시경 진단이 어렵고 발견 시 중증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치료 예후가 좋지 않다. 김 교수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gastric cancer)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내시경 치료·수술 환자 3608명 가운데 조기(1·2기) 위암 비율은 장형에서 77.8%, 미만형에서는 54.9%로 분석됐다. 미만형의 위암 발견이 더딤을 보여준다. 5년 생존율 또한 미만형(85.1%)이 장형(88.3%)보다 낮았다. 김 교수는 23일 “미만형은 위암 병변 모양이 궤양이나 융기형이 아닌 편평한 경우가 많아 내시경으로 발견이 어렵고 그만큼 예후도 나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바로 이 미만형 위암을 비롯한 위 체부암(위의 윗부분)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고 남성에서는 장형 및 위 전정부암(위 아랫부분)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표본에서 위암 환자 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배 많았지만 여성의 미만형 위암 비율(50.5%)이 남성(25.9%)을 크게 상회했다. 특히 젊은 연령에서 위 체부의 미만형 위암이 더 흔하고 고령에서는 위 전정부의 장형 위암이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40세 미만에서 남녀 모두 미만형 위암 비율이 장형보다 높았지만 여성에서는 그 비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이런 양상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장형의 비중이 늘어나며 달라졌다. 남성에서는 미만형의 비율이 빠르게 감소해 50세 이후부터 장형이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여성은 60세가 넘어야 장형 비율이 미만형을 넘어섰다. 김 교수는 “여성의 미만형 위암 비율이 높은 것은 에스트로겐이나 안드로겐 같은 성 호르몬과 관련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에스트로겐은 장형 위암 발생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40세 미만 여성은 40세 이상보다 에스트로겐 노출 기회가 많다. 여성은 50세 전후에 에스트로겐 분비가 중단되는 폐경을 맞는다.
연구팀은 또 조기 위암에서는 큰 차이 없었던 남녀 생존율이 3기 이상 진행됐을 때부터 차이가 벌어지며 여성 환자들의 예후가 더 나쁘다는 것을 확인했다. 진행된 위암 여성의 생존율이 낮은 것은 남성보다 림프절 전이가 더 많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아울러 남성 위암 환자의 사망 원인은 다른 장기의 암(폐암 뇌암 식도암 간암 백혈병 전립선암 등)이나 호흡기 계통 합병증(폐렴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신부전 간경화 등)이 눈에 띄었다. 남성의 경우 위암의 위험 요인이기도 한 흡연, 음주 등이 다른 암이나 질병에도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여성은 위암 자체나 심뇌혈관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 더 많았다. 김 교수는 “고령이거나 여러 지병을 갖고 있는 위암 환자는 다른 암이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 하며 위암 수술 후에도 정기검사를 통해 다른 질병 발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암을 예방하려면 원인 차단이 중요하다. 위험 요인 중 하나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검사를 해서 있으면 제균 치료를 받고 금연·금주를 실천한다. 특히 직계 가족 중에 위암 환자가 있는 여성은 술을 끊는 게 좋다. 맵고 짠 음식은 되도록 피한다. 40세 이상은 국가 위암검진(위내시경·위조영술)을 빼 먹지말고 받도록 한다.
문제는 예후가 나쁜 미만형 위암이 많은 40세 미만 젊은층, 특히 여성이다. 이들은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국가 위암검진)를 하지 않는 연령이라 조기 진단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위암 조기 검진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런 경우 간단한 혈액검사로 미만형 위암 발병 위험성을 미리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김 교수팀은 2019년 발표 논문에서 ‘혈청 펩시노겐2’ 수치가 높은 경우 조기 미만형 위암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경험이 있거나 40세 미만 여성이라면 그 위험도가 더 높았다. 펩시노겐2는 위에서 나오는 소화효소로, 해당 수치는 위 점막의 염증 상태를 의미한다.
혈청 펩시노겐2 수치가 20ng/㏖ 이상인 경우 미만인 그룹보다 조기 미만형 위암 위험이 약 3.1배 높았다. 아울러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경우 감염력이 없는 그룹에 비해 조기 미만형 위암 위험을 3배 가량 높이는 걸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인자를 조합해 헬리코박터균 감염력이 있으면서 혈청 펩시노겐2 수치가 20ng/㏖ 이상일 때(고위험군)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없으면서 혈청 펩시노겐2가 20ng/㏖ 미만 일 때(저위험군)보다 조기 미만형 위암 위험이 5.2배 높았다.
또 연령과 성별 분석 결과 40세 미만 고위험군은 조기 미만형 위암 위험이 12.8배, 특히 40세 미만 여성 고위험군은 21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헬리코박터균의 염증 작용이 발암 물질을 만들고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미만형 위암이 발생하고 이런 위 점막의 염증으로 인해 혈청 펩시노겐2 수치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혈액검사에서 펩시노겐2 수치가 높게 나온 경우에는 젊은 나이라 하더라도 위내시경 검사를 추가로 받아 암 여부를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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