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 최상현 기자 | 입력2021.08.23 10:11 | 수정2021.08.23 10:13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신용대출 등을 줄이는 방식으로 주택 수요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집값 안정을 위한 조치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수요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불장’에 기름을 붓는 실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시내 NH농협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주택뿐 아니라 토지 등 모든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해 신규 접수를 받지 않기로 했다. SC제일은행도 부동산 담보대출 ‘퍼스트홈론’의 운영을 일부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오는 9월까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시중은행이 잇달아 부동산 관련 대출 중단에 나서는 것은 금융위원회가 은행 단위로 가계대출 상황을 직접 관리하고, 연초 설정한 대출 한도를 넘기지 않도록 바싹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의 경우 ‘연간 증가율 5%’라는 목표치를 설정했는데, 지난 7월 말 기준 7.1%를 기록하면서 이미 넘어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가계부채 관리가 미흡한 일부 은행에 이번 주말까지 관리 대책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출 규제가 애먼 서민만 잡는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대출 규제가 투자수요보다는 실수요자에게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다주택자가 주담대나 전세대출을 받아 추가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원천 차단된 지 오래”라면서 “지금의 주택 관련 대출 대부분은 새로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하는 무주택자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도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 초점이 ‘투기와의 전쟁’에서 ‘실수요와의 전쟁’으로 바뀐 양상”이라면서 “취득세·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중과 등 세금 규제가 중첩된 상황에서도 ‘패닉바잉’에 나선 실수요자들에 의해 부동산 가격이 연일 고점을 갱신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일곱 달 연속 1% 이상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7월까지 누적 상승률은 11.12%로 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역대 최고치다.
이에 정부는 실수요자를 달래기 위해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진행하는 한편, ‘영끌’ 수단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보다 적은 금액으로 제한토록 했다. 국내 5대 은행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를 2.48~4.24%로 지난달(2.34~4.24%)보다 하단은 0.14%포인트(P), 상단은 0.11%P 인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패닉바잉으로 인한 매수세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상황이다. 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매매수급지수는 128.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출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에까지 이른 것이다.
신규 매매·전세를 고려하던 수요자들은 당장 패닉에 빠졌다. 내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장모(34)씨는 “지난 주말에 보고 온 집을 매수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담대를 막는다고 하니 당장 계약서 쓰고 은행에 신청서부터 넣는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셋집을 구하는 20대 김모씨도 “전세대출을 막아버리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월세나 살라는 의미가 아니냐”면서 “최대한 빨리 이사할 집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요즘 전세 매물도 찾기 힘들어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은행의 주담대 중단으로 인해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연쇄 중단’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각 은행이 연초 설정한 대출 증액 한도는 몇% 정도 밖에 안되는데, 집값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0%는 넘게 올라버려 초과 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서 “이런 시점에서 불안 심리로 대출 수요가 집중되면 다른 은행 대출도 곧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대출 받기가 계속 까다로워 지는데 더해, 앞으로 금리가 최소 두번 정도는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규 구매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런 규제가 장기적으로는 집값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일시적으로 집중 매수가 일어나며 단기 상승을 유도하는 양면성도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도 “집값 안정을 목표로 했다면 너무나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면서 “여기에 더해 전세대출 규제로 주거 불안을 느낀 임차인까지 매매 시장에 유입되면서 또다시 폭등장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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