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보존구역으로 묶여 정비사업이 불가능한 경복궁 서측(서촌) 일대의 주민들이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옛 공공기획)을 계기로 민간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9일로 마감되는 1차 후보지 공모에 지원하는 한편, 그간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한옥보존구역를 해제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겠다는 게 주민들의 목표다. 그러나 이 일대는 지구단위계획까지 변경하더라도 고도제한 등 여러 가지 규제가 중첩돼있어 개발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2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복궁 일대의 서촌지역(누상·누하·옥인·체부·필운) 주민들은 신속통합기획 공모 신청을 위한 주민 동의서를 걷고 있다. 경복궁 역세권 일대를 재개발해 노후화된 주거지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체부동의 경우 공모 신청을 위한 찬성동의서 30%를 거의 달성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는 한옥이 밀집한 지역이다. 사진은 고층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 전경.
이 지역은 2010년 한옥보존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재개발에 제동이 걸렸던 곳이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시재생활성화구역에서도 동의율 30%를 달성하면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공모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다시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신속통합기획은 서울시가 재개발 구역지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통상 5년 이상 소요되는 기간을 2년 이내로 대폭 줄이는 제도다.
서촌 일대는 2004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일찍이 한옥정비에 나섰던 북촌과 달리 난개발로 몸살을 앓으면서 많은 한옥이 헐리고 빌라가 들어섰다. 서울시는 이를 막기 위해 2010년 이 일대를 한옥보존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용적률 등을 제한했고, 2016년에는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하면서 16개 구역으로 나눠 관리했다.
문제는 뒤늦게 보존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보존 가치가 있는 한옥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홍종문 가옥과 같은 전통 한옥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노후화된 상태로 개발이 묶였다. 서울시는 2019년 이 일대를 도시재생활성화구역으로도 지정해 환경개선에 나섰지만, 벽화·지원센터 건립 사업 위주로 진행돼 주택의 노후도를 개선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민들은 신속통합기획 민간재개발을 통해 주거환경 개선에 나서는 한편, 지구단위계획도 변경해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주민동의서를 받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구 내 토지면적의 3분의 2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으면 지구단위계획구역 변경을 제안할 수 있다. 추진위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장기간 재개발의 발목을 잡은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고, 민간재개발이 추진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일대는 도시관리계획에 따른 고도제한 등 여러 규제가 중첩돼있어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더라도 재개발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촌 일대는 도시관리 계획상 고도지구로도 지정돼 높이 제한이 있고, 또 홍종문 가옥 등 여러 문화재도 있어 개발이 추진되려면 보존구역 해제 외에도 여러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옥보존구역도 도시관리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무작정 지구를 해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서울 시내 한옥이 밀집돼있는 곳은 북촌과 서촌 등 몇 군데에 불과하다”면서 “이런 지역 특색에 맞게 도시관리계획이 수립된 만큼, 지구 특성에 맞춰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언급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난관이 있더라도 재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삼묵 추진위 부위원장은 “이곳에는 60~70대 노인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는데, 노후준비도 안 된 분들이 많다”면서 “재개발이 제한되면서 지금도 이미 재산권이 심하게 제한되고 있는 만큼, 여러 가지 제약이 있더라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계속 부딪혀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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