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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멸망에 기후도 영향? "당시 가뭄에 기근, 민심 극도로 악화 가능성"

부동산 분양정석 2021. 11. 15. 12:14

유성운 입력 2021. 11. 15. 00:03 수정 2021. 11. 15. 06:14

울산 반구대 암각화. 신석기 시대 그림으로 추정되며 당시 바다와 연결된 이곳에서 고래 사냥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해안선의 변동으로 바다에서 24㎞ 가량 떨어져 있다. [사진 바다출판사]

새로 나온 『기후의 힘』(사진)은 기후와 역사를 접목하고, 국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기후 변화가 한국사에 끼친 영향을 풀어나간 책이다. 저자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고려의 멸망, 17세기 대규모 기근 등을 자신의 연구 데이터에 기반해 기후 변화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지구 온난화가 세계적 과제인 지금, 옛 기후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지 그에게 물어봤다.

박정재

Q : 일본 야요이 문명을 만든 것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기후난민이라고 썼는데.

A : “기후 변화의 충격으로 한반도 농경민이 남쪽으로 이주했고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가설이다. 3000년 전 금강 중하류에 송국리 문화가 있었다. 청동기 시대 벼농사를 지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2800~2700년 전 한반도에 큰 가뭄이 발생했다. 이 시기 퇴적된 꽃가루 중에서 나무 꽃가루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가뭄 때문이다. 이때 주거지의 수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벼농사가 가능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닌 것이다. 이후 송국리 문화는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벼농사는 온난습윤한 규슈 지역에서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일본 야요이 문화는 2500~2300년에 시작됐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도 맞아 떨어진다. 내가 이 시기의 기후 문제에 대한 논문을 2019년에 냈는데, 공교롭게 중국에서도 석 달 후 비슷한 논문이 나왔다.”

Q : 중국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

A : “이 시기의 가뭄은 ‘2.8ka(killo annum=천 년. 즉 2800년 전) 이벤트’라고 불리는 세계적 현상이다. 당시 벼농사를 짓던 중국 요동 거주민들이 한반도로 밀려 내려왔고 송국리 주민들도 일본으로 이동했다. 한반도 최초의 기후난민일 것이다. 이주민과의 갈등, 환경 훼손, 식량 부족 등은 기후 변화로 어려움을 겪던 한반도에 큰 충격을 줬다. 벼농사로 인구가 급증해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현재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Q : 고려와 조선의 교체, 17세기 경신대기근도 기후 변동이 배경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A :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고려-조선 교체기 기후가 안 좋았다. 중세 온난기라 습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뭄으로 작황이 안 좋고 기근으로 이어져 민심이 극도로 악화했을 것이다. 17세기 경신대기근 때는 반대로 저온습윤했다. 태양의 흑점이 적은 시기였는데 봄에 온도가 낮았고 여름·가을에 비가 많이 내렸다. 반면 영·정조 시기는 태양의 흑점이 많았던 시기로 기후가 양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대가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기후 도움일 수도 있다.”

기후의 힘

그동안 국내에선 고기후 관련 자료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한국사와 연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박 교수는 제주도의 하논(논으로 이용하는 분화구), 물영아리 오름 등에서 퇴적물을 확보해 연구해왔다.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고기후 관련 데이터를 얻기 적합하다”고 했다.

Q : 중세에는 그린란드에서도 농사를 짓는 등 지금보다 온도가 높았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가 우려할 정도인가.

A : “9~11세기엔 영국에서 와인을 생산할 정도로 평균 온도가 지금보다 높았다. 기후 변화나 지구 온난화에 부정적인 측에서 반박 자료로 이용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로 보면 중세 때 온도가 높았던 지역은 북유럽 등 일부 지역이고 전 세계적 현상은 아니었다. 전 세계의 온도가 동시에 올라가는 현재를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Q :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졌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A : “기후변화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러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그러니 이산화탄소를 가능한 한 줄여서 천천히 올라가도록 조절할 필요는 있다. 선제적으로 대비해 큰 피해를 막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