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침략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내외부 연결 교통로 관리 및 성문 방어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남한 지역의 유일한 고려 시대 도성유적인 강화중성에서 대규모의 치성(방어를 위한 성곽 시설물)이 최초로 확인됐다고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2일 밝혔다.
강화중성 성벽 내측 등성시설 전경(사진=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치성은 수도 강화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중성에서 처음 확인된 대규모의 성곽 구조물이다. 강화도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관리하고, 성문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조사결과는 강화도성의 성곽 구조와 운영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화중성은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를 강화로 천도한 이후 건립한 3개의 성곽(내성-중성-외성) 중 하나다. 강화중성은 ‘⊂’ 형태로 수도 강화를 둘러싼 토성으로, 현재 확인된 길이는 총 11.39㎞이다.
몽골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부터 1270년까지인 강도시기에 축조된 성곽 중 당시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간직하고 있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고려사’등 문헌기록에는 중성이 1250년(고려 고종 37년)에 축조됐다. 둘레가 2960칸이며, 17개의 크고 작은 성문이 있었다. 이후 1259년에 몽골과의 화의에 따라 성곽이 헐어서 훼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중성의 남성벽 구간인 대문고개 일대를 대상으로 한 이번 제3차 조사지역은 성문이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 대문고개 도로의 서쪽 능선부에 해당한다. 해발 89~91m의 야트막한 능선 정상부와 대문고개로 이어지는 동쪽 사면부를 따라 성벽이 설치되었으며, 이에 잇대어 대규모의 치성이 돌출되어 있다.
강화중성의 치성은 길이 19m, 너비 4.5~4.7m, 남은 높이 1.3~2.6m로, 이는 그동안 확인된 고려 시대 성곽의 치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치성은 성벽 축조기법과 같은 판축(판으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이나 모래 등을 넣어 단단하게 다져 흙을 쌓아올리는 기법)방식으로 축조됐다. 석축기단을 쌓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영정주)을 세운 다음, 판재를 결구해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성질이 다른 흙을 여러 겹 다져 쌓아 완성했다. 치성 주변에는 다량의 기와와 함께 문확석, 초석 등 문과 건물 부재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됐다.
한편, 성벽은 조사구역 내 능선 정상부를 따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휘어지는 형태로 축조됐다. 성벽의 너비는 4.5~4.7m로 치성과 같으며, 남은 높이는 내측 기준 1.4~2.1m, 외측 기준 2.5~3.3m이다. 성벽 내측에는 석축기단의 보축시설과 통행로가 성벽과 평행한 형태로 설치됐다. 또 치성이 잇대어진 성벽 안쪽에는 성벽과 치성으로 오를 수 있도록 계단형태의 등성시설(너비 2.4m, 길이 1.2m)이 마련됐다.
이번에 조사된 강화중성 제3차 발굴조사 성과는 12월 3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서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강화도성의 구조와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 연구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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