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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자를 목졸라 죽이는 석상 있다고.. 사람이 사자보다 강한가

부동산 분양정석 2021. 12. 17. 11:22

일러스트 = 이철형 작가

■ 김태환의 지식카페 - (19) 사람과 사자

사자가 조각했다면 반대로 만들었을 것…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지만 기록하는 자가 승자

우화·설화 속 ‘누가 더 나은가’ 경쟁엔 ‘진정으로 우월한 가치란 뭔가’에 대한 교훈도 담겨

사람과 사자가 함께 길을 가다가 서로 잘났다며 다투고 있는데, 길가에 마침 사람이 사자를 목 졸라 죽이는 석상이 있었다. 사람이 사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너희보다 강하다는 걸 알겠지?” 그러자 사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사자가 조각을 할 줄 알았다면 많은 사람이 사자 발 아래에 쓰러져 있는 걸 볼 수 있겠지.”

동물들이 누가 더 나은가를 두고 경쟁하는 내용의 설화를 쟁장설화(爭長說話)라고 한다. 여기서 쟁장은 말뜻 그대로 누가 연장자인가를 놓고 다툰다는 의미이기에 쟁년설화(爭年說話)라고도 하며, ‘두꺼비의 나이 자랑’처럼 누가 나이가 많은가를 놓고 동물들이 다투는 이야기가 가장 전형적인 쟁장설화로 꼽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손진태는 ‘조선 민족의 설화 연구’에서 이러한 쟁장설화의 근원으로 ‘십송률(十誦律)’에 실린 사막새, 코끼리, 원숭이의 다툼에 관한 이야기를 지목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큰 나무에 의지해 함께 살던 사막새와 코끼리와 원숭이가 자기만 잘났다면서 서로 무시했다. 그들은 결국 먼저 태어난 자를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화목하게 살기로 합의하고, 누가 연장자인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코끼리는 어렸을 때 큰 나무가 배꼽에 닿았다고 했고, 원숭이는 어렸을 때 땅바닥에 앉아서 나무 끝을 손으로 잡아당길 수 있었다고 했으며, 사막새는 어려서 건너편 큰 나무 열매를 먹고 눈 똥에서 지금 이 나무가 자라났다고 했다. 그리하여 코끼리보다 원숭이가, 원숭이보다 사막새가 먼저 태어났음이 드러나고, 이제 코끼리는 원숭이를 등에 업고 원숭이는 새를 자기 위에 앉히고 두루 돌아다니며 어른 공경의 미덕으로 세상을 감화시켰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도의 민간 설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 설화에 종교적, 도덕적 교훈이 더해져 불경 속에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전파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쟁장설화는 다시 교훈적 요소가 약화되고 민간 설화 특유의 민중적 해학이 강조되는 양상을 보인다. ‘두꺼비의 나이 자랑’이 바로 그러하다. 여기에서도 세 동물 사이에 나이를 두고 다툼이 벌어진다. 사슴, 토끼, 두꺼비가 잔치를 벌이는데 잔칫상을 누가 먼저 받느냐가 문제가 됐다. 사슴이 천지개벽할 때 하늘에 별을 박았으니 자신이 연장자라 주장하자, 토끼는 하늘에 별을 박을 때 사용된 사다리를 만든 나무를 자기가 심었다고 맞받았다. 이때 두꺼비가 훌쩍훌쩍 울기에 사슴과 토끼가 그 연유를 물으니 죽은 세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두꺼비의 세 아들은 각각 나무를 심어 한 아들은 별을 박는 데 쓸 망치 자루를 만들고, 한 아들은 해와 달을 박는 데 쓸 망치 자루를 만들고, 또 한 아들은 은하수를 팔 때 쓸 삽자루를 만들었으나 이들이 모두 그 일을 하다 죽었으므로, 두꺼비는 천지개벽 당시 얘기를 들으니 그 생각이 나서 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꺼비가 최고 연장자로서 가장 먼저 상을 받게 됐다.

불교 설화와 두꺼비의 나이 자랑 이야기를 비교해보면 우선 동물들이 나이 다툼을 하는 이유가 다르다. 불교 설화에서는 누가 연장자인지를 밝힘으로써 혼란스러운 사회적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나이 경쟁의 명분으로 제시된다. 반면 ‘두꺼비의 나이 자랑’에서는 누가 더 좋은 것을 차지하고 더 대접받는가를 둘러싼 이기적 동기에서 동물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 또 다른 결정적 차이는 동물들이 나이의 근거로 늘어놓는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교 설화에서 동물들은 출생신고서처럼 나이 먹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들이 근거로 삼는 이야기는 비교적 현실적이다. 현실 논리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에 그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근거도 없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나는 큰 나무만큼이나 오래 살았다’ 정도가 그들의 주장이다. 반면 ‘두꺼비의 나이 자랑’에서 사슴과 토끼와 두꺼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황당무계한 허풍이기에 웃음을 자아낸다. 사슴이 천지개벽을 운운하면서 그 이상의 연장자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나이를 한껏 올려 잡아봤지만 이보다 더 큰 허풍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데 두꺼비 설화의 묘미가 있다. 연장자가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라 누가 더 통 큰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름하는 게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어떤 진지한 교훈을 전달하려는 의도도 찾아볼 수 없는 희담이다.

쟁장설화를 나이에 관한 이야기로 국한하지 않고 백과사전의 정의처럼 “동물들이 누가 더 나은가를 두고 경쟁하는 설화”로 이해한다면, 이솝우화에는 매우 다양한 쟁장설화가 포함돼 있다. 이솝우화의 동물들은 부단히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자랑하며 다른 동물과 경쟁하려 한다. 그 유명한 ‘토끼와 거북’도 이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쟁장설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경쟁하는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해와 바람도 자기가 더 강한 자라고 주장하며 다툰다. 사람도 이 경쟁의 대열에 뛰어든다. 사람이 사자와 우열을 논한다. 식물이라고 여기서 빠질 수 없다. 석류나무와 사과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자신의 열매가 더 좋은 열매라고 주장하며 다툼을 벌인다.

이솝우화에 포함된 ‘쟁장설화’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물들이 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하는지를 전혀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다툼은 확고한 서열을 수립해 조화롭고 질서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잔칫상을 먼저 받으려는 동기에서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솝우화 속의 인물들은 생래적으로 다른 존재보다 더 우월해지고 싶어 하고 그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개인적 자존심을 세우는 것 외에, 그들의 경쟁에 어떤 다른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쟁장설화’로서 이솝우화가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우월함을 증명하는 데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그래서 이솝우화의 인물들은 단순히 자신의 우월함을 일방적으로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논거를 대며 논쟁을 벌이고, 논쟁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실험과 실천을 통해 우열을 가리고자 한다. 더 재치 있게 나이를 과장할 줄 아는 자가 승리하는 두꺼비 게임과 달리 이솝우화의 게임은 경험적 관찰에서 나온 근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암캐가 네발 달린 짐승 가운데 자신이 새끼를 가장 빨리 낳는다고 자랑하자 암퇘지가 이렇게 반박한다. “눈도 뜨지 못하는 걸 낳으니 빨리 낳는 게지.” 해와 바람은 누가 더 힘이 센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고안한다. 그리하여 길 가는 사람의 외투를 누가 벗기느냐를 놓고 둘은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결국 해가 강자임이 증명된다.

논쟁의 형식이든 해와 바람의 대결 같은 실천적 경쟁의 형식이든 이솝우화에서 우열을 가리려는 인물들 사이의 다툼은 궁극적으로 ‘우월함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으로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귀결된다. 여우가 암사자에게 새끼를 한 번에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한다고 타박하자 암사자는 이렇게 대꾸한다. “한 마리밖에 못 낳지만, 내가 낳는 건 사자 새끼라는 걸 알아둬.” 이 이야기에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붙여 놨다. “좋은 것은 양이 아니라 질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작이 황금색과 자줏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옷을 뽐내며 보잘것없는 두루미의 날개를 비웃자 두루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별 가까이에서 노래하고 창공을 날아다니지.” 또 토끼와 거북의 경주는 어떤가? 경주의 결과 거북이 놀라운 승자로 등극하며, 이와 함께 신체적 능력의 우월함보다 끈기 있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참을성이 진정한 우월함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처럼 이솝우화 속의 다양한 쟁장설화를 모아 살펴보면 왜 우화 속 모든 인물이 부단히 자신의 장점을 다른 인물들과 견주고 우월함을 인정받고자 하는지가 드러난다. 이솝우화의 ‘자기 자랑 게임’은 개별 인물 차원에서는 단순히 자존심을 세우고자 하는 허영심에서 동력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립하는 인물들 사이의 경쟁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탐색이 그 속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열과 승패를 가리고 패자에 대한 승자의 지배로 끝나는 경쟁이 아니라 좋은 가치, 진정한 가치를 향한 경쟁이다. 이러한 쟁장설화는 불교설화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교훈적이다. 사막새와 코끼리와 원숭이의 우화에서 연장자를 공경해야 한다는 교훈이 동물들의 경쟁에 외적으로 주어진 것인 데 반해, 이솝우화의 교훈은 동물들의 논쟁과 경쟁의 과정에서 비로소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솝식의 쟁장설화가 가지는 이러한 진지한 성격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근거 없는 주장만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고자 하는 자가 경쟁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사람과 사자’의 우화에서 사람은 동상 속의 사람이 사자를 목 졸라 죽이는 모습을 가리키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우월함이 입증된 것처럼 흐뭇해한다. 그러나 사자는 그 동상을 조각한 자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환기함으로써 동상의 객관적 증거 능력을 박탈해 버린다. 사자가 조각했다면 사람과 사자의 싸움은 전혀 다르게 그려지지 않았겠는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편향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객관적 진실인 것처럼 기록하고 재현한다. 그러니 사람이 스스로 빚은 조각상이 사람의 우월함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반론 앞에서 사람은 말문이 막힌다. 우화에서 마지막 말이 결론을 이룬다는 원칙을 이 우화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 논쟁의 승자는 사자임이 명백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자의 반박은 이 명제의 역도 성립함을 보여준다. 즉 기록하는 자가 승자라는 것이다. 기록하고 재현할 수 있는 권능을 장악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솝우화 속의 사자는 재현의 편향성에 대한 현대적 논의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재현의 정치학을 논하며 인간 중심적이고 권력 중심적인 세계상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

끝으로 사족을 덧붙인다면, 이 논쟁을 완전한 사자의 승리로만 보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재현의 편향성을 지적하기 위해 사자가 조각할 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조각할 수 없다는 것,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재현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없다는 것, 그것 자체가 어떤 열등함의 표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 반박만으로 사자를 목 졸라 죽이는 인간의 동상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고, 그 동상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남아 보는 이들에게 인간 편향의 거짓을 전파할 것이다. 이처럼 재현이 단순한 가상이 아니고 현실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사자는 조각을 직접 배워 스스로 사자의 위용과 우월함을 표현하고 인간적 거짓과 맞서 싸우기 전까지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여전히 불리한 처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쟁장설화(爭長說話) : 동물들 사이에서 ‘누가 더 나은가’하는 다툼. 가령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 ‘누가 더 키가 큰가?’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술을 못 먹나?’ ‘누가 더 먼저 햇빛을 봤는가?’ 등과 같은 경쟁에서 이긴 자가 최상의 지위 혹은 음식물 등을 차지하게 된다. 이 유형의 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 동물들은 거북·두꺼비·사슴·여우·토끼·호랑이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