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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 유명해진 천재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몰아보기 연구소]

부동산 분양정석 2021. 12. 17. 11:24

애플TV플러스 드라마 '디킨슨' 시즌1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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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생전엔 무명이었다. 여자라서 시를 발표하기 어려웠고, 대학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았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애플TV플러스 | 10부작 | 15세 이상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미국 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이나, 생전에는 무명이었다. 그의 시 1,800편가량 중 살아있을 때 발표된 건 고작 10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고약하다. 단지 여자라서 그의 시는 생전에 빛을 볼 수 없었다. 말년에 방에서조차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점도 영향을 줬다. 그가 숨진 후 여동생이 발견한 시들은 출판사 편집자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애플TV플러스 드라마 ‘에밀리’는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으나, 불우하게 살다간, 죽은 후에야 명성을 얻은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화면에 복원한다.


①여자라서 안 되는 것들

에밀리는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시 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이를 발휘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고 남장을 한 후 대학 강의를 몰래 듣는 등 체제에 균열을 내려 한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에밀리(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유복한 환경에서 산다. 집안은 매사추세츠주 앰허스트의 명문가다. 변호사인 아버지는 지역 유지로 정치인이기도 하다. 상류층 집안에서 안락하게 사는 듯한 에밀리는 욕구불만이 많다. 시인으로 시를 쓰고 싶으나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는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들은 시 쓰기는 남자의 일이며, 여자의 자리는 집안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에밀리의 부모님은 집안 명예를 내세우며 에밀리를 엄격하게 통제하려 한다. 에밀리는 학구열이 뜨거우나 대학에 갈 수도 없다. 이유는 마찬가지다. 여자니까. 대학은 남자들만을 위한 교육기관이니까.


②오빠 연인과의 비밀스러운 사랑

에밀리는 오랜 친구인 수와 사랑하는 사이다. 수는 오빠가 청혼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사회와 불화하는 에밀리는 사랑에 있어서도 전복적이다. 오빠 오스틴(애드리언 블레이크 엔스코)의 친구 조지(새무얼 판스워스)가 추근대나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랜 친구인 수(엘리아 헌트)와 농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둘의 은밀한 사랑만으로도 인화성이 강한데, 오스틴은 수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가족이 모두 죽으며 빚만 남은 수는 경제적 이유로 오스틴의 청혼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한 지붕 아래서 삼각관계가 형성될 판이다. 뜻대로 되지 않고, 난관만 많은 삶, 에밀리는 죽음과 불멸에 집착하며 시 쓰기로 위안을 찾으려 한다.


③시련 속에서 시가 자란다

'디킨슨'은 19세기 중반 미국 동부 시대상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가 화면에 가득할 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는 통념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에밀리의 도전적인 삶을 밝고 쾌활하게 그려낸다. 에밀리가 인습에 반하며 하는 행동은 종종 소동극으로 번진다. 그의 마음은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고 갈등하며 성장한다. 에밀리는 불화와 시련과 상실을 겪으며 시를 벼려낸다. 에밀리의 오빠 오스틴은 충동적이면서 지성이 떨어지는 인물로 종종 묘사된다. 여자라서 천재성을 사회적으로 실현하지 못하는 에밀리와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가부장제를 향한 신랄한 냉소다.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 반개)

유명 시인의 삶에 허구를 보태 재미를 만들어낸다. 당대 복식과 음식, 사회상을 엿보는 잔재미가 있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미국 동부가 배경이나 21세기 감성이 스며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에밀리와 오빠, 여동생은 부모님이 집을 비우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에밀리는 몰래 구한 아편 액을 모두의 입 안에 몇 방울씩 떨어뜨린 후 파티를 즐긴다. 사무라이 집안 출신 일본인 10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일본이 미국에 문호를 열기 전이니 있을 수 없는 일. 화면 위를 흐르는 음악 역시 지금 우리가 듣는 곡들이다. 전통사극이라기보다는 시트콤에 가까운 드라마다. 시즌3이 지난해 공개됐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올해 '최고의 TV쇼' 10편 중 하나로 선정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