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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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향토사학자 김용근씨가 돼지처럼 생겨 일명 '돼지바위'라 불린 바위 전면에 새겨진 암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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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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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남원향토사학자 김용근씨와 함께 '대곡리 암각화'가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401번지 봉황대를 방문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63호인 '대곡리 암각화'는 봉황대라 불리는 구릉의 정상부 암벽에 새겨진 조각작품으로 호남지방에서 드물게 보이는 선사시대 암각화이다. 암각화에는 봉황대의 남쪽 방향 전면 상단의 바위(넓이 4m, 높이 140㎝)에 기하문 문양이 제작되어 있다.
1991년 국사편찬위원인 김광에 의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암각화는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생긴 모습이 돼지를 닮아 일명 '돼지바위'라 불리는데 전면에 새겨진 암각화는 두 곳에 위치하며, 크기는 1~2m 내외로 상하 혹은 좌우 대칭으로 검파형문양(劍把形文樣)이 새겨있다. 검파형이란 칼 손잡이를 일컫는다.
양전동, 보성리, 안화리, 가흥동, 칠포리, 대곡리, 석장동 등 암각화를 연구한 후 '검파형 암각화의 비밀'이란 글을 쓴 김동렬씨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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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파형 암각화의 비밀'이란 글을 쓴 김동렬씨가 검파형 암각화가 주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5번째가 대곡리 암각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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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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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파형 동기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지만 신석기 시대와 겹친다. 청동기는 귀해서 무당이나 쓰는 것이며 일반적으로는 돌칼을 썼다. 중요한 건 이 디자인이 어디서 유래했는가이다. 마제석검의 손잡이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왜 고리가 두 개나 붙어 있을까? 무당의 무구라는 의미다. 원래 칼 손잡이인데 실제로는 칼 손잡이로 쓰인 게 아니다. 당시는 모계사회였고 많은 경우 여자무당이 지배했다. 샤먼의 주술 도구로 발전했고 다산을 기원하는 목적이 있다."
조상신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돼지라 여겨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밤하늘 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고구려에서는 신령한 별에 대해 제사를 지냈고 '예(濊)'에서는 새벽에 별자리를 관측해 그해의 풍흉을 예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우리 겨레는 밤하늘을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왔음을 알 수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별자리(W자형) 북극성을 의미하는 별자리 그림이 있다.
돼지의 한자 말 돼지 '돈(豚)'은 우리말 '돈'으로 발음하며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아 다산과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제사나 고사 때 돼지머리를 올리고 코와 주둥이에 돈을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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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근씨가 돼지머리 바위 위에 있는 북극성 성혈에서 핸드폰으로 방위각을 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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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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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이 고향인 향토사학가 김용근씨는 매년 정월초가 되면 대곡리 암각화를 찾는다. 자신의 문화 유전자 씨앗을 찾기 위함이다.
어느 해 지리산 구전 자원 조사 때 하동에서 무속 일을 하시던 할머니를 만났고 그와 친구였던 할머니가 제주도에서 무당일을 하는데 그 할머니가 모시는 신이 대곡리 암각화에 전해오는 칠성신이라고 했다.
그 할머니는 대곡리 암각화에서 신내림 굿으로 받은 칠성신을 모시고 제주도로 가서 무속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용근씨가 무속인 할머니에게 들은 내용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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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처럼 생긴 제단의 돼지 콧구멍에는 두 개의 구멍(성혈)이 있고 돼지머리를 두드리니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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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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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은 망자의 영혼 종착지가 북극성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은 자꾸 커져서 영원히 변하지 않은 유일한 별 북극성에 조상들의 영혼이 살고 있고 후세 사람들도 죽으면 그 조상 곁으로 가야 하는데 누군가가 북극성까지의 길 안내를 해야 한다는 것에 이르렀습니다.
북극성이 기운을 내려 눈에 들게 된 길 안내자가 돼지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목돈(目豚)을 마련한다든지, 돼지꿈은 조상이 보살펴주는 길몽이라는 등 조상과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돼지라는 것에 결론을 내고 고사 때마다 돼지머리를 올리는 실체가 되었죠.
무당이 통돼지 배를 붙들고 바로 세우면서 조상신과 접신하려는 행위랄지, 무덤에 돼지 뼈를 넣어 준다든지, 정월 초하루가 되면 돼지우리 한쪽에 고사상을 차려 주는 문화는 돼지와 조상을 연결하는 문화 행위입니다".
돼지바위 위로 올라가니 북두칠성이 새겨진 성혈과 카시오페아 자리가 그려진 5개의 성혈이 보였다. 김용근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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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곡리 암각화가 모여있는 동산 아래 부분에는 북두칠성에 해당하는 구멍(성혈)일곱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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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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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근씨가 북두칠성의 각 구멍(성혈)이 주는 의미를 설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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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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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 도착지 북극성 주변에는 5개의 별무리와 7개의 별무리가 있어요. 그게 바로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입니다. 카시오페아는 현세의 가장 이상적인 사람살이 모듬이었던 5호가 한 덩어리가 되어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를 의미하고 북두칠성은 사람살이에 필요한 물ㅡ불ㅡ나무ㅡ소금ㅡ곡식ㅡ남자ㅡ여자의 7가지 염원을 내어주는 샘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조들의 영혼이 살고 계신다고 믿었던 북극성의 칠성문화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현실 세계와 조상 세계와의 소통체는 고사와 제사였다. 북극성에 계시는 조상의 혼과 이어지는 통신망은 돼지이다. 북극성이 돼지의 눈에 조상의 정보와 기운을 담아 세상으로 보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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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사학자 김용근씨가 대곡리 암각화에 대해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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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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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사람과 한집살이를 통해 거름을 내주고 부엌 잔밥을 처리해 주고 죽어서 조상과 가족을 이어주는 잔치와 기일에 기꺼이 몸을 내주는 역할을 해냈다. 때문에 고사상 돼지 입에 돈을 끼워 넣는 것은 조상에게 후손의 사정을 알리러 가는 돼지의 노짓돈인 셈이다.
김용근씨가 마을 뒤편을 가리켰는데 그곳엔 돼지봉이라고 불리는 제월봉이 있다. 돼지바위에서 5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돼지를 꼭 닮은 제단이 있다. 돼지를 꼭 닮은 제단의 돼지코 부분에는 2개의 콧구멍(성혈)이 있고 김용근씨와 동행했던 최성미(전 임실문화원장)씨가 돼지바위를 두드리자 '둥둥'소리를 내며 울렸다.
돼지처럼 생긴 바위를 옮겨왔는지 조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위 아래 괴임돌이 있는 걸 보니 고인돌이 분명했다. 북극성에 사는 다섯 선대 조상 영혼은 돼지를 타고 대곡리 제월봉을 너머 봉황대에 도착했다. 그 영혼들은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의 기운도 함께 가져와 봉황대에 들었다. 김용근씨가 대곡리 암각화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
"조상의 영혼들은 봉황대의 돼지바위에 다섯 암각화가 되고 주위에 북극성과 다섯별과 일곱별은 성혈이 되었으니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동체의 무사 안녕과 태평성대의 염원을 고대했어요"
암각화가 제작된 곳은 풍요의식을 거행하는 제의공간이다. 제단이나 성소(聖所)의 성격을 가지고있다. 대곡리 암각화의 입지 조건도 남쪽의 산곡 평야지대를 향해 봉황대의 가장 높은 암면에 조각되어 있음이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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