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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국악 접목한 윤석철 트리오 "한국적 리듬 연주에 카타르시스 느꼈죠"

부동산 분양정석 2022. 3. 10. 11:09

2년 만에 미니앨범 '익숙하고 일정한' 발표한 윤석철 트리오

윤석철 트리오의 세 멤버 윤석철(왼쪽부터) 김영진 정상이. 방랑시인 김삿갓 같은 분장처럼 이들은 재즈 도사들이다. 앨범에선 발톱을 숨기고 쉽고 편안한 재즈를 연주하지만 콘서트에선 불을 뿜는 연주력을 선보인다. 윤석철은 "녹음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라이브는 열정적으로 뜨겁게"라고 표현했다. 안테나 제공

‘재즈계의 GD(그룹 빅뱅의 지드래곤).’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을 부르는 말이다. 지드래곤의 패션을 떠올렸다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다. 윤석철 스스로는 동료 음악인들이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고 여기지만 결코 과장은 아니다. 재즈 연주자로선 보기 드물게 젊은 팬들이 많은 데다가 자이언티 크러쉬 백예린 아이유 장기하 폴킴 등 힙합, 가요계 스타들이 앞다퉈 함께 작업하려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해도 토를 달기 어렵다.

솔로 연주자로, 작곡가로, 프로듀서로, 영화음악 감독으로, 실용음악과 교수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윤석철이 자신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윤석철 트리오로 돌아왔다. 윤석철과 베이스 연주자 정상이, 드러머 김영진이 다시 뭉쳐 2년여 만에 내놓은 앨범 제목은 ‘익숙하고 일정한’. 동그란 점과 선으로만 구성된 커버 이미지가 인상적인 이 미니앨범(EP)에는 윤석철이 작곡하고 프로듀스, 녹음, 믹스까지 도맡아 완성한 5곡이 담겼다.

9일 서면으로 만난 윤석철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익숙한 일이 매우 소중해졌는데 이제 곧 일정하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점과 선을 통해 미니멀한 느낌으로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일정한 호흡으로 음악을 발표하고 있으며, 우리의 음악은 ‘조금 더 친근하고 익숙한 느낌’이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윤석철 트리오의 새 앨범 '익숙하고 일정한'. 안테나 제공

앨범 제목처럼 윤석철 트리오의 음악은 친숙하다. 재즈라면 수십 년 전 스탠더드 곡의 재해석이나 초보자를 움찔하게 하는 현란한 즉흥 연주를 떠올리기 쉽지만, 윤석철 트리오의 재즈는 익숙하면서도 동시대적인 선율로 단숨에 듣는 이를 잡아 끈다. ‘젊은 세대의 재즈란 이런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대중적이라는 점에선 같은 맥락이지만 이번 앨범은 트리오의 이전 앨범과 색깔이 사뭇 다르다. 어쿠스틱 피아노를 쓰지 않고 일렉트릭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위주로 연주하면서 ‘펑키 국악 재즈’라는 신묘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타이틀 트랙으로 내세운 ‘한국전래동화’는 KBS 애니메이션 ‘옛날 옛적에’의 배추도사 무도사가 절로 연상되는, 장난기 가득한 위트와 유머러스한 비트가 넘실대는 곡이다.

세 멤버는 뮤직비디오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등장해 민속촌 한복판에서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건반과 베이스, 드럼을 연주한다. 수미쌍관을 이루는 마지막 곡 ‘도사님 펑크’는 ‘한국전래동화’의 루프(반복 악절)를 다른 리듬과 콘셉트로 확장한 일종의 ‘리믹스’ 버전이다. 두 곡 모두 1970~80년대 풍의 통속적인 신시사이저 연주를 차용해 키치적 재미와 위트를 더했는데 전혀 다른 장르가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지난해 11월, 씻김굿 명인 송순단 선생님, 소리꾼 김율희와 함께 씻김굿과 판소리를 재해석하는 작업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어요. 짧은 시간 관련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송 선생님께서 계신 (전남) 진도에 내려가 말씀도 들었죠. 작업을 끝낸 뒤 자연스럽게 이 멜로디가 나왔고 금세 완성했어요.”

윤석철 트리오의 세 멤버 정상이 윤석철 김영진. 안테나 제공

국악과 재즈의 결합이란 표현에 대해 그는 “거창해서 좀 쑥스럽다”면서 “단지 드럼 세트에 구하기 쉬운 징과 꽹과리를 구해서 리듬을 짠 뒤 평소 좋아하는 1970~80년대 나이트클럽 풍 신시사이저 소리를 만들어 5음계 위주로 펑키하게 연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저희 셋 다 국악에 대해 모릅니다. 국악인과 협연하지도 않았죠. 초등학교 때 전통음계인 중임무황태를 배웠을 것이고 마당놀이 흥부전, 배추도사 무도사 같은 걸 보며 재밌어 했겠죠. 재즈 연주자가 된 뒤엔 퓨전 국악 팀에서 세션 연주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이런 한국적인 느낌으로 연주하는 게 제게 너무 즐거웠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어요.”

나머지 세 곡은 국악과 별 관련이 없지만 솔과 R&B, 펑크(funk)의 영향을 받은 쉽고 단순한 재즈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사랑노래’는 윤석철의 프로듀서 ‘부캐(부캐릭터)’인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의 첫 앨범 ‘테일러(Tailor)’에서 그룹 데이식스 멤버 원필을 초대해 녹음했던 곡이다. 대중적인 가요에 가까웠던 원곡을 “좀 더 펑키한 모타운(미국의 솔ㆍ리듬앤드블루스 음악 전문 음반사) 스타일”로 다시 풀어냈다. ‘익숙하고 단순한’은 제목처럼 쉽고 단순한 곡인데 “작업량이 너무 많아 잘 쉬지 못했을 때 스스로 위로하듯” 만들었다고.

2009년 정규 1집 ‘그로스(Growth)’를 시작으로 이번까지 네 장의 정규 앨범, 세 장의 EP를 낸 윤석철 트리오는 그룹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개별 활동을 통해 음악적 표현을 넓혀가고 있다. “재즈 클럽에서 만난 뒤 참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는데 그간 많은 일이 있었고 각자의 삶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옆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소중한 존재죠.”(정상이) "음악 활동 시작과 동시에 만났던 친구들입니다.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죠. 좋은 친구이자 동료로 지금까지 함께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겐 의미가 남다르죠."(김영진)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