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길은 부산 동구의 골목을 잇는 도보 여행 코스로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살아 숨 쉰다. '이바구'란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뜻하는데 길을 걷다 보면 이리저리 얽힌 골목을 따라 옛이야기가 굽이굽이 흘러든다. 여러 코스들 중에서 부산의 근현대사를 품은 초량 이바구길을 걸어보았다.
●추억과 역사를 품은 골목길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역 건너편에서 출발한다. 흔적만 남은 옛 남선창고 터와 지금은 세련된 카페로 변모한 구 백제병원을 지나면 담장 갤러리에 닿는다. 좁은 골목 담장에 추억의 장면들을 사진과 그림 패널로 엮어 옛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알록달록한 타일을 붙인 계단을 오르면 초량 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초량 초등학교는 90년 가까이 되는 오랜 역사를 품은 학교이다. 이곳에서 걸출한 스타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가수 나훈아와 방송인 이경규, 음악감독인 박칼린 등이 초량 초등학교 출신이다. 학교 담장을 따라서 이 지역의 변천사와 주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지역 인사들을 소개한 인물사 담장이 꾸며져 있다.
학교 건너편에는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초량 교회가 서 있다. 이곳은 1892년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건립한 부산 최초의 교회로 지금도 건재한 모습이다. 초량 교회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이 펼쳐진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1925년에 부임한 주기철 목사를 위시해 교회 신도들이 신사 참배에 반대하며 일본의 폭압에 저항했다.
초량 이바구길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865-48
초량 초등학교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49
초량 교회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53
●삶의 애환이 담긴 168계단
교회에서 조금 더 오르면 초량 이바구길의 하이라이트인 168계단이 나온다. 좁고 가파른 계단이 까마득히 이어져 있는 168계단은 칸칸이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경사가 심한 언덕길 계단이라 오르내리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계단보다는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168계단 바로 옆에 설치된 모노레일은 원래 이곳 주민들을 위해 만든 편의시설로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여행자들에겐 초량 이바구길을 즐기는 특별한 체험거리 된다. 계단을 오를 때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편하다. 모노레일 길이는 60m 정도이며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행된다. 모노레일 창밖을 바라보면 경사진 언덕이 그대로 나타나며 아찔함이 느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모노레일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련해진다.
168계단 위쪽에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부산항과 부산항대교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낮 풍경도 좋지만 어둠이 내린 후 화려한 야경을 감상해도 좋은 포인트이다. 계단과 전망대 구석구석 베이커리와 카페, 공방 등 가 볼만한 곳들이 꽤 있다. 당산과 이바구 공작소를 지나 산복도로변에 세워진 유치환 우체통 전망대에 도착하면 길은 막바지에 이른다. 종착지인 까꼬막에서 남은 여운을 정리해보자.
이바구길 모노레일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994-155
이바구 충전소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영초윗길 25
까꼬막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798-467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카페
초량 이바구길 초입에는 브라운 핸즈 백제 카페가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옛말처럼 카페인을 보충할 겸 커피 한 잔 마시며 워밍업 하기 좋은 공간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일제강점기 시기의 건축물이다. 부산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 1920년대 건립된 백제병원이 약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멋지고 세련된 카페로 변신한 것이다.
아마도 이 건물처럼 사연 많은 곳도 드물 것이다. 오래전 병원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중식당이 되었다가 일본군 장교 숙소와 사무소, 예식장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칭으로 불려진 것이 수십 년 세월. 몇 년 전 디자인 라이프 웨어 브랜드인 브라운 핸즈에서 카페로 만들면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모습이다.
건물 외벽은 물론 기본 골격과 내부 마감재들을 고스란히 살린 인테리어가 비밀스럽고 매혹적이다. 여기에 거친 바닥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벽면 타일이 빈티지한 느낌을 더한다. 실내가 조금 어두운 편이지만 창문에서 비쳐 드는 햇빛이 자연적인 명암을 만들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16
영업시간 : 10:00~22:00
휴무일 : 연중무휴
●추억의 도시락과 시락국 한 그릇
168계단 옆에 있어서 168이라 이름을 지었나 보다. 168도시락국은 착한 가격에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어 알뜰한 여행족에게 인기가 많다. 초량동 할머니들이 손수 차린 집밥 같은 밥상을 받을 수 있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어릴 적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도시락. 네모난 양은 도시락에 하얀 쌀밥과 소시지, 김치, 멸치볶음, 계란 프라이가 담겨 있다. 도시락 뚜껑을 닫고 사정없이 흔들면 맛있는 한 끼가 완성된다.
부산의 먹거리인 시락국 백반도 추천 메뉴다. 그날 만든 정갈한 반찬들과 따끈한 시락국이 큰 쟁반에 가득 담겨 나온다. 얼큰한 맛이 당긴다면 육개장도 좋은 선택이 된다. 여기에 직접 만든 식혜 한 잔으로 입가심하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온다. 식사 한 끼에 식혜나 팥빙수, 율무차 등 식후 디저트를 곁들여도 만원 한 장이면 충분하다.
168도시락국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영초길 191
영업시간 : 10:00~19:00
휴무일 : 연중무휴
글·사진 정은주
세상의 문을 여는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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