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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마당]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부동산 분양정석 2022. 4. 4. 10:47

평화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이번 정부가 평화를 강조하지 않을 거라고 미리 염려하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를 당연히 나누는 상황이 이상

어떤 정부가 평화를 반대할 수 있는 것인가

임미정 PLZ페스티벌 예술감독·한세대 피아노과 교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에서 임금이 큰 귀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발사는 대나무 숲에 비밀을 말한다. 바람 불 때마다 그 이야기가 퍼져 결국 많은 사람이 임금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임금이란 말은 아니지만, 내게는 이 세상의 크고 작은 결정권자들의 행동과 세계적 상황에 대한 의외의 놀라움이 있었다.

시작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부터였던 것 같다. 8년 전 그가 당선됐을 때, 독특한 이력과 더불어 의외의 정치인이 나타났다고 생각했고, 설마 하던 많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 전 세계 소셜미디어를 장식했다. 2019년 코로나19가 나타났다. 2019년에 이게 말이 되나? 생각했다. 팬데믹 초반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생일선물로 마스크 5장을 받았는데 그렇게 귀하게 느껴졌다.

이후 미얀마에선 군부가 일어나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하고, 대만의 정치적 상황도 위태해 보였다. 그렇게 어찌어찌 2년을 넘기는 순간, 진짜 전쟁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다. 전쟁이 났다고? 인터넷에는 러시아 젊은 병사들이 울먹거리는 장면들이 돌아다녔다. 병사라고 볼 수 없는 앳된 얼굴들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들에게 따뜻한 음료수와 먹을 것을 준다. 병사들은 그저 울고 싶은 얼굴로 우리에게 각인됐다. 소셜미디어는 혼란스러워하는 국민들과 병사들의 영상,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와 수많은 분석과 평론하는 사람들, 연일 이게 뭐지? 하는 소식들로 가득하다.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세상은 지그재그로 가더라도,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줄 알았다. 우리 일상의 단면을 보면 분명 나아지고 있는 면들도 보이지만, 그토록 위엄있고 뭔가 대단히 중요한 결정들을 하는 사람들, 엘리트 정치인들은 연신 의외의 모습들을 보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나 정의의 가치를, 속계산이야 어떻든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그런 가치들을 외쳤던 엘리트 정치인들은 우리가 아는 그들조차도 아니었나 보다. 어떤 엘리트 정치인들은 왜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이 곧 우리 스스로를 해롭게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2019년 PLZ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강원도 평화5군 접경지역에서다. DMZ를 PLZ, 평화와 생명의 땅(Peace and Life Zone)으로 인식하자는 생각으로, 큰 그랜드피아노를 철원 녹슨 철조망 앞과 고성 최북단 바닷가, 기차가 멈춘 제진역, 아름다운 인제 꽃 축제, 양구와 화천 북한강가에 갖고 다녔다. 70여년 전 아팠던 역사의 지역들은 자연이 회복되어 아름답게 변해있었고,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음악과 강원도 곳곳의 지역 이야기들은 자연 음악회 영상으로 제작되어 TV에 소개되고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PLZ국제평화음악캠프에 참여해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배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지역은, 언제나 생명과 평화의 땅이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DMZ를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인식하고자 하듯이, 한반도 전체를 그렇게 지켜야 하고, 지구적 차원에서도 모든 지역을 그렇게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분이 ‘이제 정부가 바뀌었는데 평화페스티벌은 괜찮나요?’하고 물었다. 질문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게 왜 관련 있지? 평화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유치원 때부터 가르치고, 보수나 진보를 떠나 지구에 사는 사람 모두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어떤 정부가 평화를 반대할 수 있는 것인가? 2022년이 아닌가? 이번 정부가 평화를 강조하지 않을 거라고 미리 염려하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를 당연히 나누는 상황이 이상했다. 어느 정부든 국민이 뽑는 것이고 만일 평화를 실행하지 않는 대통령이 있으면 국민이 후원하지 않을 텐데, 이번 대통령이 관심 없을 것이라고 속상해하거나 지레 걱정하는 상황이 참으로 이상하기만 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는 여러 버전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우리가 아는 것은 경문왕 버전으로 이발사가 속시원하게 대나무밭에서 털어놓고, 많은 사람이 알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최근 본 버전은 어떤 용감한 청년이 임금에게 이제 그 큰 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라고 조언했고, 임금은 이를 받아들여 좋은 정치를 했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동화의 결말처럼, 지역이나 국가에서 크고 작은 결정권을 가진 이 세상의 수많은 임금들에게,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으로 좋은 결정, 상식적인 결정들을 내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주권을 가진 우리 모두가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이들에게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고, 주권자인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비단 우리 땅에서만이 아니라 이 지구촌 어디에도 이유 없이 싸우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