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싶은 섬 1번지' 매물도 해품길 5.2km·소매물도 등대길 3.1km
쪽빛 파도, 분재 같은 등대섬, '모세의 기적' 실사판 열목개..행복 충전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한려수도(閑麗水道)는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아름답고 청정한 바닷길을, 두 개의 지명을 따서 예찬한 이름이다. '여유로움(閑)과 아름다움(麗)이 최고인 바다'답게 여수 오동도에서 거제 지심도까지 바닷길 300리에 있는 아름다운 섬과 바다와 해안을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외도보타니아, 바람의 언덕, 해금강, 비진도, 욕지도, 금산 등 남해안의 보석 같은 섬과 명소들이 두루 포함돼 탐방객수도 국내 두 번째인 국립공원이다.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에 340만명에 달하던 방문객수는 2021년에 190만명으로 44%나 급감했다. 단체탐방객이 전무하다시피한 결과다. 소수인원과 나홀로 탐방객수는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육지에 둘레길, 제주도에 올레길이 유행을 타면서 섬에도 걷는 길이 생겼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다백리길은 주민들의 마실길이나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을 이어서 만든 길이다. 이 길은 6개 섬, 총 42㎞에 걸친 오솔길로 ①미륵도 14.7㎞ ②한산도 12㎞ ③비진도 4.8㎞ ④연대도 2.3㎞ ⑤매물도 5.2㎞ ⑥소매물도 3.1㎞에 조성됐다. 이번 여행은 ⑤⑥구간 매물도와 소매물도를 찾아 나선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매물도(每勿島)라는 지명은 섬의 형상이 말이 쉬고 있는 모습이라 매미도(馬尾島), 또는 황폐한 땅에 메밀을 많이 심어 메밀도라 했는데, 경상도 발음으로 변화해 매물도가 됐다. 과거에는 등대섬이 붙어있는 소매물도에만 관광객이 집중됐지만, 근래에는 매물도의 둘레길과 캠핑장이 유명해 지면서 걷기꾼들과 백패커(야영객)가 많이 방문한다.
소매물도로 들어가는 배는 거제와 통영에서 출발해 매물도를 경유하고 각각 45분,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두 섬을 다 걷기 위해서 아침 첫 배로 들어가 마지막 배로 나올 수도 있지만 가급적 1박2일로 여유롭게, 한(閑)려(麗)다운 여행을 즐길 것을 권한다.
◇ 매물도 ; 면적 1.4㎢, 해품길 5.2㎞ “망망한 바다와 소소한 섬 풍경에 취하다”
매물도 풍경. 왼쪽 오솔길 위에 장군봉이 오똑하고, 가운데 대항마을 밑으로 짙푸른 바다가 창연하다 © 뉴스1햇살에 반짝이는 통영 앞바다 색깔이 짙푸르다. 통영의 화가 전혁림 화백이 이 시퍼런 색을 '코발트 블루'라 했다. 여객선이 연안을 벗어나자 어떤 아이가 새우깡을 흔들어 수십 마리의 갈매기를 불러 모은다. 완행버스처럼 이 섬 저 섬에 들른 배가 비진도를 지나자 파도가 높아져 몸이 들썩인다.
1시간 20분쯤 걸려 매물도의 당금항에 도착하니, 마을은 어촌이라기보단 예술촌 인상이다. 배가 불룩한 '바다를 품은 여인' 조형물과 세련된 싸인물,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에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언덕으로 오르는 하얀 시멘트 골목을 따라 쭉 올라가면 해품길 이정표가 나와,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걷는다.
바다백리길 제5구간 해품길이다. 섬의 산허리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과 그 가운데에서 장군봉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이 있다. '해를 품은 길'이란 의미처럼, 걷는 내내 해를 쪼이며 망망한 바다와 소소한 섬풍경을 통과하는 길이다.
발전소 건물을 지나 왼쪽 언덕까지 500m를 오르니 무인도인 어유도가 코앞에 늠름하고 멀리 거제도가 선명하다. 10여 년 전의 어유도는 방목한 염소가 온갖 나무뿌리들을 마구 갉아먹는 바람에 식물생태계가 초토화되고 경사지의 흙이 무너졌다. 이에 염소들을 포획해 주민에게 돌려주고, 훼손지를 복구해 생태계를 복원한 모범적인 장소로 포상을 받았다. 다른 섬에서는 절벽지형에서 야생화된 염소를 포획하다가 레인저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수십 개의 텐트가 팽팽하게 설치된 캠핑장을 통과한다. 이곳은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 붉은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는 명당으로, 백패킹(자연에서 야영하기)의 성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부드러운 오르막을 따라,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도열한 숲터널을 지나고, 제주도 오름과 같은 비탈을 길게 올라, 전망대에 닿는다. 경관해설판에 대마도 표시가 있지만 해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멀리 괭이갈매기의 천국인 홍도가 외롭게 떠있다. 섬이라기 보단 여러 개 '난쟁이 바위'에 빨간 등대가 설치된 등가도의 모습이 애처롭다. 높은 파도가 칠 때마다 어떻게 견디는지 마음이 쓰인다. 섬의 테두리를 걷는 길은 계속 햇볕 따가운 해품길이지만, 이따금 동백나무 터널이 나타나 '그늘 선물'을 제공한다.
작은 산을 내려가, 다시 큰 산의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난 임도 그늘을 700m 오르니 곧 장군봉(210m)이다. 바위정상은 통신탑이 차지하고 있고, 그 아래에 말과 장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다. 스테인레스 코일로 만든 말의 등에 올라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바다 쪽으로 설치된 전망데크에서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한참 바라본다. 매물도에서 1㎞ 떨어져 있지만, 징검다리 한 개 건널 거리처럼 가깝게 보인다.
장군봉을 내려서는 길 내내 소매물도와 등대섬 경관이 다가선다. 오후의 역광으로 바다는 은빛으로 반짝이고, 섬은 회색빛, 검정빛으로 아른거린다. 몽환적이다. 오솔길 옆으로 연보랏빛 낚시제비꽃, 하얀색 딸기꽃이 지천이고, 분홍빛 진달래가 듬성듬성하다.
매물도에서 카메라 줌을 당겨 바라본 바다의 수묵화. 앞줄부터 가익도, 소지도, 연화도, 욕지도 © 뉴스1 꼬돌개 오솔길과 바다에 떨어지는 노을. 국립공원의 정주영 해설사는 “섬에는 사연과 이야기가 있어, 통영의 바다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 뉴스1산을 완전히 내려와 섬의 모서리에서 길을 꺾어 동백나무 터널을 통과하면 정겨운 오솔길이 나온다. 이 길과 주변을 꼬돌개라고 부른다. 낭만적인 발음으로 들리지만 비극적인 단어다. 200년 전쯤, 흉년과 전염병으로 마을사람 모두 이곳에서 '꼬돌아져서(죽어서)' 부르는 지명이다. 착 가라앉은 바다가 꼬돌개의 슬픔을 알고있다는 듯 벌겋게 노을 지고 있다.
곧 대항마을이 나온다. 집들의 반은 반듯한 펜션이고, 반은 허름한 민박이다. 과거에 살았던 스레트 지붕집 몇 채가 무너진 폐가도 있다. 낮은 고개를 지나 출발지였던 당금마을로 내려서며 매물도 둘레길을 완주했다. 망망한 바다와 소소한 섬 풍경에 취하고, 이야기가 있는 오솔길과 섬마을을 걸었던, 3시간 반의 '소확행 걷기'였다.
◇ 소매물도 ; 면적 0.5㎢, 등대길 왕복 4.4㎞ "예쁜 분재 같은 등대섬, '모세의 신비'로 길이 열리는 열목개"
소매물도는 인구 50명에 불과하지만, 코로나가 발생되기 전에 연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 '명품섬'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매물도에 붙어있는 등대섬이 명품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망태봉까지 500m 고갯길이 만만치 않다. 왜 조그만 섬의 등산로가 처음부터 가파를까? 바다 깊이 뿌리를 둔 산의 정상이기 때문이다. 100m쯤 올라가면 섬 둘레로 난 쉬운 길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진해서 올라간다. 어서 등대섬을 보고싶기 때문이다. 가파른 시멘트길, 돌계단을 올라서면 정상 직전에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가 있다. 새까맣게 탄 아이들이 눈 반짝거리며 연필에 침을 묻히던 광경을 상상해본다.
언덕 끝의 동백나무 거목을 지나서, 등대섬으로 곧장 가는 길과 100m를 더 올라가서 등대섬 전망대를 거쳐 가는 길이 갈린다. 어디서 보나 아름다운 등대섬이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구도가 제일 멋지다. 정상인 망태봉(152m)에 자리한 하얀 관세역사관(밀수선 감시시설)을 지나, 전망대에 서서, 드디어 등대섬을 내려다본다.
등대섬. 분재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을 보는 것처럼, 그림 같은 풍경이다 © 뉴스1누가 저렇게 정성스럽게 빚었을까? 수석전시회에 출품한 바위봉우리와 분재전시회에 출품한 정원을 합친 작품인가? 한쪽 모서리에 강인한 바위봉우리들이 섬을 호위하듯 서 있고, 섬의 구릉은 옅은 갈색 초지와 녹색 상록수로 덮여있다. 정상에는 하얀 등대가 날렵하게 꼽혀있고, 산 아래에는 작은 건물의 주황색 지붕들이 별사탕처럼 박혀있다. 거친 절벽과 바위가 빈틈없이 섬을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거기에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가 부서져, 섬 테두리는 언제나 하얀 거품으로 일렁인다. 섬 바깥으로 짙푸른 바다가, 바다 위로 안개빛 하늘이 하염없이 깔려있다. 그림 같은 장면, 영화 같은 장면이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기다란 계단길을 내려서야 한다. 곳곳에서 방향과 높이가 다른 등대섬을 바라보고, 새롭게 나타나는 바다와 섬과 공룡바위를 조망하며, 바람에 일렁이는 풀밭을 통과해서, 마지막 나무계단을 길게 내려서면 열목개에 도착한다. 밀물일 때 뱃길이 열리고, 썰물일 때 사람의 길이 열리는 곳이다. 길은 하루에 두 번 열린다.
길이 열리기 직전의 열목개와 등대섬. 가까이 투명한 바닷물, 그 옆에 잉크를 풀어놓은 파란 바닷물 © 뉴스1 길이 열려 열목개의 몽돌길을 건너가는 사람들.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이다. © 뉴스170m의 미끈미끈한 몽돌길을 건너, 풀밭 사이로 난 나무계단을 올라 등대에 올라선다. 소매물도와 매물도가 푸른 바다위에 떠있는 풍경이 평화롭고, 우뚝우뚝 선 바위절벽과 촛대 같은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며 감탄한다.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절경이다.
등대섬은 길이 잠기기 전에 돌아서야 할 섬이다. 열목개를 건너, 해발 0m에서 152m인 망태봉까지 얼추 50층 건물높이의 계단을 올라서야 한다. 10층마다 쉬면서, 기나긴 오르막 끝에서 다시 한번 등대섬을 바라보고, 아쉬운 안녕을 고한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소매물도 분교에서 해안선을 따라가는 둘레길을 택했다. 진달래와 산벚나무 꽃이 만개해 눈이 즐겁고, 육지에선 듣지 못한 새소리에 귀가 즐겁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그늘 밑을 설렁설렁 내려가는 오솔길의 끝에 마을과 선착장이 나온다. 등대섬까지 가며 쉬며, 돌아나오며 3시간쯤 걸렸다.
등대섬을 떠나며 바라보는, 수석전시장 같은 아름다운 바위봉우리들 © 뉴스1소매물도에 와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즐긴 만큼, 그런 풍경을 온전하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오늘 여기저기서 풀을 뜯는 관광객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산나물로 보였겠지만, 국립공원인 이 섬에서만큼은 귀중한 야생식물이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죽어서 고사목이 된 소나무도 많았다. 육지에서 전파된 병충해다. 관광선진국에서는 육지에서 섬으로 이동할 때에 개인방역을 철저히 한다. 신발바닥에 소독제를 뿌려 육지의 씨앗과 미세한 생물들이 유입되지 않도록 한다. 그래야 섬 고유의 생태계가 살아남고, 자연에 기반을 둔 향토문화가 유지되며, 그래야 관광객이 찾아와 섬 경제에 활력을 준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마을 풍경이다. 관광지화 하면서도 예전의 섬마을 풍경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아직 마을 뒤편에 남아있는 몇 채의 옛집과 돌담을 잘 활용하고, 기존 건물과 거리에도 경관개념을 적용해서, 정감어린 섬마을로 발전되기를 소망한다.
돌아가는 배에서 멀어지는 소매물도를 바라보며, 섬의 애칭인 ‘쿠크다스 섬’을 생각한다. 국내의 모 제과회사가 80년대에 등대섬에서 ‘쿠크다스 과자’ 광고를 찍어 섬도 과자도 유명해졌다. 부서지기 쉬운 이 과자가 아직도 인기 있는 것처럼, 망가지기 쉬운 등대섬과 소매물도가 오랫동안 존재하며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통영시 동피랑 벽화마을. 그림 같은 골목, 골목 같은 그림이 있는 언덕마을 © 뉴스1다시 통영이다. 통영을 대표하는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이순신 장군이다. 장군이 지휘하던 해군사령부의 옛 이름이 바로 통제영(統制營), 곧 통영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등이 있어, 그들의 유적이나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으로도 하루 일정이 모자라다. 골목 같은 그림, 그림 같은 골목이 있는 언덕마을 동피랑과 서피랑을 걷고, 향긋한 멍게비빔밥과 달달한 꿀빵, 그리고 담백한 충무김밥에 구수한 시락국(시래기된장국)을 먹어주는 것은 통영여행의 필수다. 코로나 블루를 벗어날 여행지로 한려수도의 섬과 바다를 ‘엄지척!’ 권한다. 섬 여행! 밀접접촉 없는, 여권이 필요 없는 해외여행이다!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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