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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 '일무'.. '정구호 스타일'로 거듭나다

부동산 분양정석 2022. 5. 5. 09:55

서울시무용단 19~22일 공연
정혜진 단장·정구호 감독 인터뷰
"모던한 新일무·新전통 보여줄 것"

정혜진(왼쪽) 서울시무용단장과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달 29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일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궁중무용 중 하나인 종묘제례악 일무를 새로운 감각으로 해석했다. 김지훈 기자


‘정구호 스타일’은 2010년대 이후 한국 무용계를 설명하는 키워드 가운데 맨 앞에 놓여야 할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 미술감독, 브랜드·공간·전시 등의 비주얼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정구호가 한국 무용에 센세이셔널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정구호는 연출뿐만 아니라 무대·의상·조명·소품 등 미장센 전 분야의 디자인을 맡아 촌스럽게 여겨지던 한국 무용에 세련미를 부여했다. 국립무용단의 ‘단’(2013) ‘묵향’(2013) ‘향연’(2014) ‘춘상’(2017) ‘산조’(2021), 전북도립국악원의 ‘모악정서’(2019), 경기도무용단의 ‘경합’(2022) 등에서 정구호 스타일은 평단의 엇갈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정구호가 이번엔 서울시무용단과 손잡고 ‘일무’(佾舞)를 선보인다. 오는 19~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일무’는 종묘제례악 의식무인 일무를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안호상 사장 취임 이후 전속 예술단 중심 제작극장으로 변화를 표방한 세종문화회관의 성패를 가늠할 첫 관문이다. ‘일무’의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안무가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을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정구호 감독님과 예전부터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국립무용단의 도약을 끌어낸 주인공이시잖아요. 제가 예전에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할 때 무용극을 기획하며 정 감독님을 모셔오고 싶었지만 제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못했습니다. 올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안 사장님이 정 감독님과 작업을 제안하시길래 바로 OK했죠.”(정혜진)

안 사장은 국립극장장 재직 시절 국립극장을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등 전속단체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변모시켰다. 당시 국립무용단은 정 감독과 손잡고 만든 ‘향연’ ‘묵향’ 등으로 대극장용 한국 무용으로는 드물게 매진 사례를 이끌어냈다. 이번에 안 사장이 정 감독에게 또다시 러브콜을 보낸 것은 서울시무용단도 일반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레퍼토리를 보유하는 게 시급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무용 작업을 시작할 때 전통과 모던이 반반씩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모던하면 관객들이 어렵게 느끼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해 왔죠. 그동안 작업을 토대로 서울시무용단에서는 모던함이 좀 더 많이 들어간 작업을 과감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정구호)

정 감독은 대부분의 예술가가 부담스러워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대해서도 만족을 표했다. 그는 “한국무용 공연에는 정사각형 무대보다 직사각형 무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겐 직사각형 무대가 더 한국적으로 느껴진다”면서 “게다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처럼 큰 무대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미니멀한 무대인데, 선 몇 개로만 채워지는 등 더 미니멀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무’의 콘셉트 이미지.


한국의 궁중무용은 정재(呈才)와 일무(佾舞)로 나뉜다. 궁중 잔치에서 추는 정재에는 봄날 꾀꼬리의 몸짓을 표현한 춘앵무나 모란 꽃병을 가운데 놓고 춤추는 가인전목단 같은 춤이 포함돼 있다. 일무는 종묘에서 종묘제례악의 일부로 추는 춤이다. 일무의 일(佾)은 ‘줄’을 뜻하는 것으로 가로와 세로로 줄을 지어 추는 게 특징이다.

“수십 명의 무용수가 열을 지어 같은 춤을 추는 일무만큼 모던한 전통춤은 없습니다. 일무는 움직임이 적고 심플하지만 균형과 절제를 위해 숨 고르기가 필요해요. 규정이나 제한이 많다는 것은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은 제가 생각하는 신(新)전통을 보여줄 겁니다.”(정구호)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1막 일무, 2무 춘앵전과 가인전목단을 전통 안에서 새롭게 재해석한 뒤 3막에서 일무의 요소를 뽑아내 새롭게 창작한 신(新)일무를 보여줄 예정이다. 빠르고 강렬한 음악에 맞춰 선보이는 신일무는 정 단장과 함께 현대무용 안무가 김성훈(영국 아크람 칸 무용단 단원) 김재덕(싱가포르 T.H.E 댄스 컴퍼니 해외상임안무자)이 안무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전통적 일무에서 시작해 신일무, 즉 일무를 토대로 창작한 춤으로 끝납니다. 신일무의 경우 분명히 일무의 요소를 갖고 안무했지만 움직임의 속도가 다른 데다 움직임의 연결을 새롭게 만들면서 일무와 다르게 보입니다.”(정혜진)

이번 작품은 일무를 토대로 한 만큼 무대 위 무용수들이 자리를 찾아가며 열을 맞추는 게 특징이다. 무용수들이 자로 잰 듯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동작을 맞춘 ‘칼군무’가 필수다. 정 단장은 “칼군무를 위해 무용수들이 정말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전통이 현대로 이어지고, 다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한국 무용의 매력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