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으로 암 고친 문정남씨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봉우리 올라..2만 3,456번째 등정
문정남씨가 대구 달성군 함박산 전망대에서 손을 들어 경치를 즐기고 있다. 그는 ‘23,456번째 봉우리’ 등정 기념산행을 5월 12일 함박산에서 했다.
“암에 걸린 건 스트레스 때문이었어요.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교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학생부장을 맡았어요. 그때 상업고등학교는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담배 연기가 꽉 차요. 아무리 학생 지도 한다고 해도, 요즘 애들이 어디 말 제대로 듣나요. 막 대들어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죠.”
문정남(81)씨는 ‘워킹산행의 왕’으로 꼽힌다. 수십 년간 산행으로 오른 봉우리 개수가 2만3,456개(5월 기준)에 이른다. 등산인들은 최다 봉우리 경쟁을 하는 이들을 소위 ‘봉우리 헌터’ 혹은 ‘봉 따먹기 한다’고 하는데 10여 년 전부터 그는 1인자로 인정받고 있다.
퇴직 후 주5일 20여 년 넘게 산을 다녔다. 봉우리 개수를 추가하기 위해 가보지 않은 산을 찾아 전국을 숱하게 누볐다. 중독에 가까운 그의 산행이 알려져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 ‘아침마당’에 등산 달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지독한 산행 습관은 “암을 등산으로 치료하면서 생겼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과음하지도 않았던 그가 암에 걸린 이유는 “퇴직 전 학생주임을 맡아 지도했던 2년 동안의 스트레스 때문”이라 분석했다. 퇴직 후 직장암을 발견했으나 이미 3기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아산병원에서 1차 수술을 받았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재수술을 그는 거부했다. 수술 준비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였다. 수술 전 25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링거를 맞으며 있었는데, 산을 쏘다니던 그가 병실에 누워 있으려니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것. 당시 65kg이었던 몸무게가 45kg으로 줄었다고 한다.
봄꽃이 깔린 꽃길을 걷는 문정남씨.
가족들의 설득으로 재수술을 받았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후 6개월간 항암주사를 맞으며 추이를 지켜보는데, 다시 절망에 빠졌다. 암이 간으로 퍼진 것. 수술 받을 자신이 없었던 그는 미친 듯이 산으로만 다녔다.
“담당 의사가 얘기하기를 암세포가 가장 싫어하는 게 산소라는 거예요. 그래서 산소 함유량이 가장 높은 산으로 가는 게 최고의 치료법이라 믿고 매일 산행을 했어요. 운동도 되고, 산행하면 자연스레 몰입이 되거든요. 잡념이 없어지고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려요. 등산이 암에 가장 좋은 치료약이에요.”
이런 그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간암 수술을 받기 위해 CT를 찍었는데, 암이 사라졌다고 한다. 의사는 “1,000명 중 한 명은 이렇게 낫기도 하는데”라며 의아해했다. 종교가 없는 그였지만 완치는 ‘신의 기적’이라 믿는다.
언제까지 산을 탈 수 있을지 의문이던 그는 산 개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100산을 탈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산행하다 100개가 넘으면 ‘200산을 탈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식으로 늘려왔다. 항암 치료 받을 때도 산행 했으며, 가족이 말려도 “차라리 산에서 죽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산에서 적은 숱한 산행 기록들.
산의 개수 아닌, 봉우리 개수
이렇게 암이 완치된 후 그는 심근경색으로 큰 수술을 받았고, 백내장 수술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코로나에도 감염되었다. 6~7년에 한 번씩 수술 받았을 때 외에는 산행을 5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척추협착증이 있지만 “나이 들면 누구나 있는 증상”이라며 “이걸 한마디로 얘기하면 노화”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정형외과 가봤지만 진통소염제 처방해 주는 게 전부였다”며 다리가 저려서 걷기가 힘들 때는 진통소염제를 먹고 산에 간단다.
산의 개수로 착각할 수 있으나 봉우리 개수이다. 가령 지리산이라면, 중봉, 천왕봉, 반야봉, 써리봉, 제석봉, 형제봉처럼 모든 봉우리 개수를 다 헤아리는 것. 지도에 높이만 표시된 봉우리도 개수에 포함한다. 0m 이상은 다 헤아리기에 56m봉이 있다면 이것도 개수에 해당되는 것. 그래서 당일산행 한 번에 많을 때는 20여 개의 봉우리를 쓸어 담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2만 개가 넘는 봉우리를 오른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놀라운 기록이다. 정상에 올랐다는 증명은 표지기(등산리본)와 한글파일 기록이다. 오른 봉우리 정상에 ‘文政男’ 이름이 적힌 표지기를 매달고, 한글파일 표를 만들어 산행을 기록한다.
몇 번째 봉우리인지 헤아리는 순번, 산 이름, 높이, 소재지, 날짜, 지출, 산행 일수, 산악회명(안내산악회 이용 시) 순으로 나눴다. 이 과정에서 백두대간을 비롯 9개 정맥도 완주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표지기를 매단다.
“히말라야 8,000m를 가는 게 아니라면 산 높이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목포 유달산만 해도 낮지만 그 위세가 남다르지 않습니까. 강원도 가면 산 높이가 1,000m 넘어도 들머리 고도가 700m 넘는 곳도 많아요. 낮은 산이라 해도 해발 50m 이하에서 산행 시작하는 곳도 많아요. 높고 잘난 산은 등산로가 잘 나 있어요. 낮은 야산은 산길이 없어 명산보다 훨씬 고생스러울 때가 많아요. 산이 낮다고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산을 알려면 아직 멀었다’고 여기죠.”
개척 산행이 일상인 그에게 비싼 등산복은 사치다. 가시에 찢기고 긁히는 게 다반사라 “시장 싸구려 등산복만 입는다”고 한다.
등산화는 3켤레를 돌려 신는데 1년에 한 켤레씩 떨어진다. 등산화는 유명 브랜드의 등산화를 구입하는데, 국산만 구입한다. 그는 “한국 산에서 한국 신발로 충분하다”며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평생 국산만 썼다”고 한다.
“사람들은 제가 건강하기 위해서 산에 간다고 말해요. 혹은 최다 봉우리 기록을 위해서 산에 간다고 말하기도 해요. 아녜요. 그냥 등산이 좋아서 산에 가는 거예요. 등산하다 보니 건강이 따라오고, 기록하면서 산 타다 보니 봉 개수가 늘어난 거예요. 지금도 봉우리 오를 때마다 성취감을 느끼고, 하산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껴요.”
문정남 선생이 2만 개가 넘는 봉우리를 오르는 데 가장 공헌한 이는 부인 정행자(79) 여사다. 보통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산에 갈 채비를 하는데, 부인이 아침밥을 차리고, 산에서 먹을 도시락을 싼다. 지방의 산을 다녀올 때는 밤 10~11시 넘어 귀가할 때가 다반사인데 늘 저녁 밥상을 차리고 등산복 빨래까지 한다. 그래서 그는 “아내는 내 산행의 가장 큰 공헌자”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2006년까지는 부인 정씨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함께 산행했으며, 100개 넘는 산을 함께 올랐다.
평생 문씨의 산행을 내조한 부인 정행자 여사. 그는 “남편 고집은 가족들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고 한다.
봉우리 헌터들의 조촐한 기념축하연
5월 12일에는 작은 기념산행이 열렸다. 2만3,456번째 봉우리 등정을 기념하는 행사를 안내산악회 산행을 통해 연 것. 안 가본 산만 찾는 그의 입맛에 맞는 안내산악회는 거의 없는데, 그나마 알려지지 않은 산 위주의 산행을 하는 강송산악회 단골 회원이다. 강송산악회의 대구 달성군 함박산(432m) 산행 후 식당에서 조촐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강동구와 송파구의 앞 글자를 따온 ‘강송산악회’는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산을 타려는 등산고수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20년간 맥을 이어왔다. 복장만 봐도 베테랑 향기가 풀풀 나는 이들이다. 이날 산행의 최고령인 심룡보(85)씨는 예비역 육군 중령 출신으로 1만8,000여 개의 봉우리를 오른 2인자다.
“원래 내가 1등이었는데, 2011년쯤 추월당했어요. 한창때 내가 한 달에 20일을 산에 가면, 문정남씨는 25일을 가요. 대단한 사람이야.”
국내 최고수 봉우리 헌터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3,000개의 산을 올라 오르는 산마다 시조를 써 시조집을 낸 김은남 시인. 문정남씨와 1만3,000개의 봉을 오른 김신원씨. 1만8,000개 봉우리를 오른 2인자 심룡보씨.
1994년 거인산악회를 통해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등산의 매력에 빠진 심씨는 지독한 산꾼이자 술꾼이다. 은퇴 후 거의 매일 산행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한 갑의 담배를 피운, 색다른 강자로 통한다. 지금은 고령이라 예전만큼 자주 산행은 못 하고 있어, 문정남씨가 부동의 1위가 되었다.
김은남(80) 시인도 참여했다. 시집 <삼천산 시탑을 위하여>를 펴낸 시조시인인 그는 오르는 산마다 그 산을 주제로 시조를 써, 3,000편이 넘는 시조를 남겼다. 1990년대부터 산행기를 일간지에 연재하며, 대표적인 산악인 시조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은남 시인은 “오늘은 대한민국 산악계의 새 역사를 쓰는 날”이라며 산 친구인 문정남씨의 산행을 축하했다.
‘배창랑과 그 일행 산꾼들’이라는 표지기로 유명한 배창랑씨도 동행했다. 그는 “대단한 분의 대단한 산행에 함께 하여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정남씨의 23456번째 봉우리 기념산행에 참가한 등산인들. 알려지지 않은 산만 찾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등산인들이다
항상 새로운 신부를 찾는 기분
가장 큰 목소리로 그를 축하하는 이는 김신원(79)씨다. 문정남씨와 함께 산행하는 날이 많은 그는 1만3,000여 개의 봉우리를 오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베테랑이다.
“2만 개 봉우리라고 하면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산행한 날짜로 따지면 4,500일이에요. 12년 6개월을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산행하면 가능한 기록이란 거죠. 문정남씨는 얼마나 산 욕심이 많은지 지방에 같이 가면, 숙소를 잡자마자 곧장 산으로 가요. 밤늦게 들어와서 다음날도 새벽부터 산을 타러가요. 우리가 산행하면서 목숨 고비 넘길 때도 많았어요. 혀를 내두를 만한 열정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어요.”
가장 많은 봉우리를 올랐지만, 가장 산행 속도가 빠른 건 아니다. 80대의 문정남씨는 느리지만 성실하게 걷는다. 고령에도 스마트폰으로 오룩스맵Oruxmap 등산앱으로 신중하게 방향을 잡는다. 스틱 하나를 들고 유연하게 걷는다. 그는 “산행을 하면 오히려 자잘한 통증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등산 입문자들에게 해줄 조언을 청했다.
“원래 저는 스틱을 안 썼어요. 통증이 생기면서 스틱을 썼는데 한결 편해졌어요. 더 일찍 썼더라면 관절 통증이 훨씬 줄었을 거예요. 젊은 사람도 건강할 때부터 스틱을 쓰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두 개를 짚고 몸의 균형을 잡으며 산행하세요. 가파른 내리막에선 한 개를 써도 좋아요. 한 손은 나무를 잡을 수 있어서 안전하게 빨리 갈 수 있어요.”
매일 새로운 산을 찾는 기분은 어떤지 묻자, “항상 새로운 신부를 찾는 기분”이라며, “아주 어렵게 산을 대하고 존중한다”고 얘기한다. 갈림길 하나, 지능선 하나, 꽃 한 송이도 놓치지 않는 그의 산행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가 중독적인 등산을 20년 넘게 해왔지만 큰 수술을 여러 번 한 것만 보더라도, 등산이 만병의 치료법은 아니다. 하지만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 효과는 분명하다. 노화를 막지는 못하지만 자연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줄 수는 있다.
“약은 약간 도와주는 거예요. 약에만 기대면 해결이 어려울 수 있어요. 우리 몸은 자체 치유 능력이 있어요. 가만히 있지 않고 운동하면 치료가 돼요.”
함박산 산행을 마친 베테랑들이 식당에서 조촐한 기념식을 열었다. 김은남 시인의 축시와 참가자들의 축하가 이어졌고, 산꾼들은 그에게 언제까지 산에 갈 것인지 물었다. 활짝 웃던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에게 은퇴는 없어요. 못 걸을 때까지 산행할겁니다.”
월간산 2022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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