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 연지연 기자 | 입력2021.09.03 14:31 | 수정2021.09.03 14:31
“이미 많이 올랐잖아요. 그러려면 앞으로 더 오를 만한 여력이 갖춘 걸로 사야지요. 재개발 될 가능성이 있는, 이 구역 안에 있는 다세대·연립주택(빌라)를요.”
맘 급한 무주택자들을 홀리는 ‘그림 주의보’가 내려졌다. 그림이란 노후 빌라가 모여있는 곳에 네모 박스로 구획을 그려 재개발 대상지역으로 표시해두는 것을 뜻한다. 재개발이 될 수 있다는 건 빌라의 상품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이 그림이 가짜일 수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끼리 마음대로 구획을 정해놓고 호재를 만들어 본인 물건 매도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한 데다, 매도 전까지 적극적으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다가 매도 후엔 활동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빌라를 사면서 각종 호재를 고려하지 않을 순 없지만, 이내 재개발이 되리라는 낙관만 가지고 빌라에 투자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서울 종로구 일대 빌라 밀집지역 전경.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연합뉴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천의 A동의 재개발 추진위원회 단체 카카오톡 방이 갑자기 폐쇄됐다. 말이 추진위원회일 뿐, 그저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카카오톡 대화방을 없앤 것 뿐이지만 남겨진 이들은 당황했다. 이들이 재개발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방에 참여했던 노후빌라 소유주 김모 씨는 “지도 위에 빨간색으로 박스를 그려놓고 여기 안에 집을 사야한다고 노후도니 용도지역이니 설명을 해줬는데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요즘 다시 알아보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사람도 있고, 안 된다는 사람도 있어 잘못 샀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서울시의 B동과 C동 등 노후 빌라 밀집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B동의 경우 서울시에서 얼마 안 남은 노후 빌라촌으로 꼽히지만 실제 사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는 없다. 가로주택정비나 소규모 재건축을 통해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재개발 추진위원회 단체 카카오톡방은 새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B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선매수를 해놓고 호재를 흘린 다음에 매도에 성공하면 방이 사라지는 일이 최근 있다고 들었다”면서 “더 이상 소유주도 아니니 추진위원회에 있을 자격도 없다고 말하면 더 따질 말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냥 적극적인 모임 정도였으니 법적으로 큰 문제도 없겠지만, 이 사람들 말 믿고 빌라를 산 사람들은 좀 황당하긴 할 것”이라고 했다.
C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실제로 거주할 사람이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이면 회수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재개발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면서 “지금은 집값이 오르는 국면이라 매매가 빨리 이뤄지기도 하지만, 원래 빌라는 아파트보다 팔기가 어려운데도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일부 지역에서 빌라 시장이 혼탁해진 것은 집값 급등기가 계속되면서 무주택자들이 아파트 대신 빌라 등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건수(계약일 기준)는 2313건으로, 아파트 매매 건수 1862건과 비교해 451건 많았다. 빌라 거래량이 아파트 거래량을 넘어선 현상이 8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파트 매매가 빌라 매매보다 월간 기준으로 2∼3배까지도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빌라 선호 현상이 뚜렷해진 셈이다. 아파트만큼은 아니지만 값도 올랐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서비스 ‘리브온’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11.57%, 서울 연립주택 가격 상승률은 4.73%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거주자가 빌라를 매수할 때 각종 호재를 살펴보는 일은 당연하지만 재개발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곳이 아니라면 실제 사업까진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즘 유행하는 부동산 투자용어인 ‘선진입(호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주택을 매입하는 것)’이나 ‘초기재개발지 투자’는 감당해야 할 투자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제로 사업이 많이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엔 각종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아직 논의도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곳의 빌라가 언젠가 신축 아파트로 변모할 것을 기대하고 사는 것엔 신중해야 한다”면서 “만족하면서 실거주를 한다는 대전제에서 매입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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