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부동산 투자 차단 정책에
애먼 무주택 실수요자 피해
대출 제한 전방위 확산에
실수요자 패닉 청와대 청원글도 속속 올라와
전세대출 124조, 3년 전比 131%↑
가계부채 관리대책에 전세 규제 검토
매일경제 | 조성신 | 입력2021.10.03 15:06 | 수정2021.10.03 15:15
서울시내 시중은행에 대출을 알리는 안내문구가 적혀있다. [매경DB]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에 이어 집단대출까지 옥죄면서 입주를 앞둔 실수요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필요한 금액 이상으로 대출을 받아 '빚투'하는 가수요를 막겠다는 의도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지만, 실수요자들은 일생의 꿈인 내 집 마련을 위한 '금융 사다리'를 없앤 꼴이라며 성토하고 있다.
18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빚 증가 속도를 줄이고 상환 능력 이상의 과도한 빚을 차단하려는 대출 옥죄기가 실수요자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데, 집단대출 막아놓으면 실수요자 죽어야 하나요?'라는 A씨의 글과 B씨가 쓴 '집단대출 규제 풀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 A씨는 "거의 11년 만에 아파트가 신축돼 오는 10월 27일부터 첫 입주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 금융위원회에서 대출 한도를 축소시키고, 은행들은 집단대출을 고금리에 선착순으로 실행해주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출받아 잔금을 치러야 하는 서민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돈 없는 서민은 입주도 하지 말고 길거리에 나앉아 죽으라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보다 앞서 17일에는 '생애최초 주택 구입 꿈 물거품. 집단대출 막혀 웁니다'라는 제목의 글도 게시됐다. 모두 정부의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 길이 막힌 서민 실수요자들의 하소연이다.
NH농협은행이 지난 8월 신규 부동산담보 대출 등을 중단한 데 이어 KB국민은행도 지난달 29일부터 잔금대출 한도 축소에 들어갔다. 잔금 대출의 담보 기준을 분양가나 KB시세, 감정가액 중 가장 낮은 금액으로 변경했다. 이럴 경우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가 기준이 돼 대출 가능한 금액은 크게 낮아지게 된다. 하나은행도 이날부터 일반 주담대 일부 한도를 줄이고, 전세대출 한도도 곧 축소할 예정이다.
한 청원인은 "전세금이 부족해서, 중도금이 부족해서, 잔금이 부족해서 마음 고생하는 서민들이 많다"며 "입주를 앞두고 있는 입주자에 대한 대출은 한도 따지지 마시고 막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청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인 청약 당첨자가 본청약과 입주 때까지 겪을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이미 분양을 받고 자금계획을 세웠던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당한 소급 적용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연구위원도 "아파트를 청약할 시점에서 대출규제 강화를 예상하지 못하고 자기 돈이 부족한 채로 청약을 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면서 "건설사가 중도금 납입을 연장하는 등 자금 부담을 일부 감당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1주택 실거주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청원자도 있었다. 그는 "갑작스런 대출규제로 인해 당장 입주를 코앞에 두고있는 실거주자들은 대출이 막혀 막막한 상황"이라며 "1금융권이 막히면 서민들은 정작 높은 이자율을 안고 2금융권, 사채를 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신규 분양 아파트 입주 한 달을 앞두고 집단대출을 막는 바람에 높은 금리에 선착순으로라도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은행 대출 한도를 막지 말고, 서민과 실입주자들에게는 집단대출을 풀어준다는 공식 발표가 시급하다. 힘들게 된 청약, 생애 첫 주택 구입을 이런 식으로 막는 것은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천정부지 집값에 실수요 대출도 급증
(왼쪽부터)3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정은보 금융감독원 원장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진선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전세·정책 모기지·집단대출 규모는 403조9000억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말 383조4000억원에서 6개월 만에 20조5000억원(5.3%) 증가했다. 2018년과 비교하면 53.9%(141조5000억원) 급등한 규모다.
증가폭을 끌어올린 것은 전세대출이다. 같은 기간 전세대출 잔액은 124조4000억원에 달했다. 2분기 기준으로는 2019년 39.1%, 2020년 31.9%, 2021년 26.1%로 가장 가파른 속도를 보였다. 3년 전 53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70조7000억원 늘어 131.6% 폭증했다. 이 기간 정책모기지와 집단대출까지 각각 45.5%, 25.4% 불어났다.
규모 기준으로는 집단대출이 가장 컸다. 집단대출은 재건축이나 신규분양 아파트에 입주하는 차주 중 일정요건을 충족한 이들에게 일괄 실행하는 상품이다. 올 상반기 151조4000억원을 기록해 37.4%를 차지했다. 다만, 비율은 전체 파이의 절반가량 차지하던 2018년에서 줄어들었다. 전세대출 비율이 20.4%에서 30.7%로 늘어난 영향이다.
이들 상품은 투기목적의 자금으로 활용하기 어렵고 대상이 서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세대출은 5% 이상 낸 계약금 영수증과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계약서, 임대인 통장사본 등을 제출해야 대출이 실행된다. 중도금 집단대출은 일반적으로 70%가 무주택자에 실행된다. 등기가 우선돼야 하고 분양 아파트가 9억원 이상이라면 대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책모기지도 대게 청년, 신혼부부, 무주택자,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한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취약계층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고강도 대출규제의 부정적 여파를 우려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경기가 어렵다는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총량만 묶는 건 부작용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일괄적인 대출규제는 생계자금이 필요한 이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131% 폭증한 전세대출 옥죈다
전세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도 대출 한도 축소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정감사 직후 발표할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대책에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3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가계부채 관리방안 등을 논의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가 실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가계부채 증가세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대출이 꼭 필요한 수요자들은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을 폭넓게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세대출은 실수요자 대출이기에 세밀하게 봐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조건이 좋아 늘어난 부분도 있다"며 "금리라든지 조건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어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전세대출을 옥죌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전세대출의 보증 한도를 줄이는 방식이다. 전세대출은 주택금융공사·SGI서울보증·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에서 대출금의 90~100% 보증해 줘 금리가 낮게 책정된다. 9월 셋째주 기준 주금공이 보증한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평균금리(은행연합회 자료 참조)는 2.64~3.03%다. 보증 한도가 줄면 은행이 떠안는 위험도 커져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대출 심사도 깐깐해 져 한도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대출이 꼭 필요한 수요자에 대한 보호 방안까지 포함해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이달 중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되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방침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며 "현재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하는 전세대출은 실수요가 많은데 금리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실수요자들의 불만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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