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김남준 | 입력2021.10.05 05:01
옹벽 높이에서 본 아파트 모습. 옹벽이 가파르게 조성돼 있고 아파트 동과도 가깝다. 함종선 기자
대장동만 있는 게 아니라 '백현동'도 있었다. 부동산 개발 민간사업자가 논란 속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사례가 성남시에 또 있다. 대장동 아파트들과 비슷한 시기에 사업이 진행돼 올 6월 입주한 성남시 백현동 '판교 A아파트(전용면적 84㎡이상 1223가구)'다. 이 '백현동 프로젝트'를 추진한 B민간사업자(특수목적금융투자회사·PFV)의 감사보고서상 분양이익은 3000억원에 육박한다.
지구단위계획하에 진행된 이 사업은 성남시장이 구역 지정 결정 및 고시권자이고,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다. 민관 합동으로 개발된 대장동에서는 공공이 확정이익을 얻었다지만 민간의 개발이익이 과도해 문제가 됐다. 백현동은 공공이 빠진 민간개발 사업이다. 전북으로 본사를 이전한 공공기관인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한 이 프로젝트는 다른 아파트 개발 사업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점이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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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업자 토지매입 후 용도 상향
우선 B사는 2015년 2월 한국식품연구원과 수의계약을 거쳐 해당 부지(11만2861㎡)를 2187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대부분 토지(10만1014㎡)의 용도는 자연녹지였다. B사도 자연녹지 가격으로 감정평가 받은 가격에 매입했다.
2012년 식품연구원 부지. 연구원 건물 뒤로 산림이 우거졌다. 국토지리정보원
그런데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5년 9월 성남시는 이 부지의 용도를 준상업지와 비슷한 '준주거지'로 상향조정했고, 준주거지로 바뀐 뒤의 감정평가금액은 4869억원으로 배 이상 뛰었다.
지구단위계획에서 이 프로젝트처럼 자연녹지에서 1~3종 주거지를 뛰어넘어 준주거지로 4단계나 용도가 상향조정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용적률=돈'인데 자연녹지는 용적률이 100%이하이고, 준주거지는 400%이하여서 사업성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지기 때문이다. 대형건설사인 C사의 한 임원은 "용도를 한 단계 상향조정하는 것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성남시가 이렇게 파격적인 종상향을 해 준 명분은 '공공성'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은 2015년 1월 성남시에 용도변경을 요청하면서 '공공성 확보 위한 임대 아파트를 건립”계획을 제출했고, 성남시는 임대주택 건립을 조건으로 용도를 변경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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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 매입 후 사라진 '공익'
하지만 임대주택이란 '공익'은 불과 1년여 만에 사라졌다. 이 부지의 매각 과정을 감사한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식품연구원은 성남시에 임대주택을 일반 분양으로 바꿔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모두 24차례나 보냈고 성남시는 2016년 12월에 일반 분양으로 계획을 바꿨다. 한국식품연구원은 부지를 매각한 이후라 이런 요청을 할 이유나 권한이 없었지만 B사 대신 공문을 보냈다. 당시 감사원도 한국식품연구원이 부당하게 민간 업체 영리 활동을 지원했다며, 실무자 징계(해임 1명·정직 1명·주의 2명 )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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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측 "성남시 요청 따른 대리 공문"
한국식품연구원이 국회에 제출한 백현동 부지 매각 절차와 관련한 해명자료. 한국식품연구원
이런 수상한 일처리의 배경에는 '성남시의 요청'이 있었다는 게 한국식품연구원 주장이다. 연구원은 국회에 제출한 해명자료에서 “성남시와 매입자(B사) 협의로 공공기여 면적(기부채납)을 성남시 요구대로 들어주는 대신 임대 분양을 일반 분양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했다. 성남시가 기부채납을 더 받고자 임대를 일반 분양으로 바꿔주는 합의를 B사와 이미 했다는 얘기다.
한국식품연구원이 국회에 제출한 백현동 부지 매각 절차와 관련한 해명자료. 한국식품연구원
다만 관련 공문을 한국식품연구원이 발송한 것은 “임대에서 일반 분양 전환할 때 가격 상승에 따른 민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혜 시비를 막기 위해 공문 발송을 민간 업체인 B사가 아닌 공공기관인 한국식품연구원이 하도록 성남시가 요구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당시 담당 직원의 퇴직 등으로 현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불법과 특혜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2017년 행정사무감사에서 "특혜는 없고 혁신도시특별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했다"고 밝혔었다.
고도제한을 피하기 위해 땅을 파고 옹벽을 만든 판교 A아파트 부지의 조성 당시 모습.네이버 항공뷰
이 프로젝트에 대한 특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B사업자는 준주거지로의 용도변경을 통해 용적률을 316%로 높여 받았지만 해당 부지는 고도제한(서울 비행장 인근) 때문에 주어진 용적률을 다 활용하기 불가능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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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관리법 위반한 50m 옹벽 허용
그런데 성남시는 산을 깎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게 허용했고, 사업자는 더 많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주변 옹벽 높이는 최대 50m까지 높아졌다. 이 사실이 지난 5월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감사원이 성남시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인허가 과정에서 산지관리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백현동 프로젝트와 관련해 감사원이 아파트 옹벽 높이에 대해 산림청에 질의를 했고, 산림청은 15m 이하로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산지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아파트 비탈면(옹벽 포함)의 수직높이는 15m 이하가 되도록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백현동에 우리 아파트 브랜드로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B사가 요청했지만 15m 이상의 옹벽 조성은 입주 후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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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들, 일부 부대시설 사용 못 해
실제 해당 아파트는 옹벽 문제 때문에 '동별 준공'이라는 사실상의 임시사용허가만 받은 상태다. 이 때문에 입주민들은 단지 내 일부 부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부대시설은 옹벽과 거의 붙은 위치에 조성됐다. 성남시 관계자는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 등을 구조안전성 검증 절차와 감사원 감사결과 등을 본 후에 사용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완공 이후의 판교A아파트 단지. 아파트 그림자가 옹벽 정상 위에 있을 정도로 아파트와 옹벽이 가깝다. 국토지리정보원
B사는 큰 이익을 얻었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B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B사는 지난해까지 이 아파트 분양으로 1조264억원의 분양매출을 올렸고 누적 분양이익은 2476억원이다. 입주 때 받을 잔금(분양미수금 1100억원)에 대한 이익(364억)까지 고려하면 분양이익이 2840억원에 달한다.
B사는 자본금 50억원의 PFV이고 지분의 일부는 C증권사가 갖고 있다. 이에 대해 B사 관계자는 "성남시의 요구로 우리 돈으로 업체를 선정해 안전성 검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준공허가를 빨리 내주지 않는 성남시를 상대로 소송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남시의 과도한 요구로 기부채납 조건인 R&D센터부지를 예정보다 늘린 8000평으로 조성했고, 시민을 위한 공원도 1만 평이나 조성했기 때문에 사업자 수익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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