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운 입력 2021. 10. 25. 00:03 수정 2021. 10. 25. 05:28
이훈석 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
“지난 9월 15일 오전 11시경 울릉도 통조림공장 소속선 광영호를 탄 해녀 14명 외 선원 등 합 23명이 출어 중에 있든 바, 틀림없이 미군 비행기라고 추측되는 비행기 1대가 날아 서독도 주변을 선회하면서 4개의 폭탄을 던졌다 한다…그럼으로 울릉도 도민과 독도 조사단 일행은 폭격사건의 진상조사를 정부 당국과 군 당국에 의뢰하는 한편 앞으로 이와 같은 경고 없는 폭격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요망하고 있다.”
1952년 9월 21일 조선·동아·경향 등 일간지를 장식했던 기사의 일부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독도에서 미군으로 추정되는 공군기가 폭격 훈련을 하면서 어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52년 9월 한국산악회 독도조사단이 미군의 독도 폭격훈련을 해군에 보고한 전문 원본. [사진 이훈석 대표]
이 소식을 외부에 알린 것은 홍종인(1903~1998) 당시 조선일보 주필. 해방 이후 한국산악회를 이끌면서 독도 탐사를 주도했던 그는 미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공군기가 독도 인근을 폭격장으로 이용하는 것을 목격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이때 한국군 측에 보낸 긴급 전문 원본이 확인됐다. 이훈석(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는 최근 고서점 등을 통해 입수한 당시 문서를 24일 공개했다.
홍 주필은 그해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3차례에 걸쳐 이런 내용의 전문을 보냈고, 군은 미군과 유엔군 측에 정식으로 문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산악회의 독도 탐사는 성공하지 못했다. 9월 22일 마지막으로 해군 측에 보낸 전문 내용은 이렇다.
“22일 드디어 독도 행을 결행했던 본 조사단은 오전 11시경 독도까지 약 2㎞ 접근하였으나 두 시간 이상 계속되는 폭격 연습으로 상륙하지 못하고 부득이 일단 울릉도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음. 이날 날씨는 극히 청명하여 비행기의 폭격광경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어민 피해와 독도 일대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 서술했다.
조사단을 이끈 언론인 홍종인씨가 울릉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사진 이훈석 대표]
“국가로서는 어디까지나 우리 영토상의 우리 국민의 평화로운 생업상 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무리 절해의 무인고도라고 하지만 하등의 연락도 양해도 없이 무경고로 남의 국토와 국민 위에 폭탄을 던지는 경솔한 행동에 대해서는 상대가 누구이건 주권국가의 최소한 존엄으로써 적절 신속한 대책이 당연히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미군과 유엔군 측의 답변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후 독도에서 폭격 훈련이 실시됐다는 기사는 더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산악회 일행은 이후에도 독도 탐사를 추진했고 결국 1954년 성공했다.
이훈석 대표는 “전쟁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독도를 우리 영토라고 인식해 탐사대를 파견하고 폭격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후 이를 막으려 한 탐사대의 헌신을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도의 날(10월 25일)을 맞아 홍종인 당시 주필과 한국산악회의 활약이 묻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6·25 전쟁 후 홍 주필은 언론 자유를 쟁취하는 활동에도 헌신했다.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1959년에는 취재의 자유 보장 등을 내무장관에게 요구하는 언론 자유 쟁취 활동을 벌인 공로로 필리핀 막사이사이 신문상 후보로 추천됐다. 1974년에는 박정희 정부의 압력을 받은 기업들이 정부에 비판적이던 동아일보에 광고 계약을 무더기로 해약하자 세 차례에 걸쳐 개인 명의로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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