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 <3> 순환경제가 만든 새로운 바람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일까? 보통 재생원료는 신재보다 품질이 떨어져 가격이 50~70%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EU 시장에서 투명페트 재생원료 가격이 신재 가격을 추월했다. 기이한 현상이다. '재활용'이 가격을 떨어뜨리는 약점이 아니라 도리어 높이는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꼴찌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순환경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바람
재활용 시장에서 보이는 낯선 현상들은 순환경제의 날갯짓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바람이다. 생산·공급 과정에서 일정 비율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재생원료 사용의무화 규제'가 재활용 프리미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포장과 환경 연구원(AMERIPEN)' 조사에 따르면 자국 내 주요 기업들의 페트병 재생원료 사용 목표량은 연간 약 90만 톤에 달하지만, 현재 공급되는 양은 22만 톤에 불과하다. EU에서도 2025년까지 연간 1,000만 톤의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플라스틱 재생원료의 공급양은 지난해 기준 630만 톤에 그쳤다. 고품질 재생원료 품귀현상은 당분간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돼 재활용 프리미엄 현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재생원료 사용의무화 규제는 재생원료 시장과 신재 시장을 분리해 재활용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선진화시키는 강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신재 가격이 떨어지면 재생원료 가격이 같이 떨어지면서 수요도 위축되는 등 재활용 시장이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재생원료 사용이 의무화되면 신재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재생원료 가격 유지는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활용 시장 안정성이 높아지면 쓰레기 처리체계가 안정화돼 쓰레기 대란의 위험도 낮아진다.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을 위해 투자한 만큼 시장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재활용 산업 및 기술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재생원료 품질이 높아지고, 재생원료 수요가 증가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대기업의 재활용산업 진출 ... 정부 '조정자 역할' 필요
다만 선순환구조를 만들기에 앞서 재활용산업 구조전환으로 인한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대기업 및 대자본의 재활용산업 진출이 늘어나게 되면 현재 재활용산업의 주축이 되는 수백 개 영세한 중소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골목상권에 대형 마트가 진출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이미 석유화학 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의 재활용 시장 진출 움직임에 재활용 업체들 반발이 심상찮다. 이들은 재활용 분야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재활용산업의 선진화와 중소기업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과제다. 재활용 업체 내부에서 자기혁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시장 내에서 적절한 역할분담을 하도록 정부가 조정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환경규제를 넘어서서 적극적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재활용산업이 준비되지 않으면 순환경제 시대의 격변을 헤쳐갈 수 없다. 순환경제는 우리나라 재활용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좋은 바람이 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태풍이 될 수도 있는 이유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하지 말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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