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동우·이상무 화백의 작품과 삶 조명하는 기념사업들
고 신동우 화백의 대표작인 <풍운아 홍길동>의 주요 등장인물들(왼쪽)과 고 이상무 화백의 대표 캐릭터 독고탁 / 독고탁컴퍼니 제공
스윽스윽 펜이 지나간 선은 금세 사람의 형상으로 바뀐다. 가벼운 붓질 몇 번에 얼굴은 홍조를 띠고 하늘은 푸르게 물든다. 1980년대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만화가 고 신동우 화백(1936~1994)의 생전 모습이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한 온라인 전시장 속에서 재생되고 있다. 사단법인 올재가 설립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특별 온라인 전시회’는 그 시절 ‘국민 만화가’라는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하던 신 화백의 작품과 생애에 초점을 맞췄다. 영상 속 신 화백은 특유의 부드러운 선과 빠른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그림 한편을 선보인다.
“많은 분이 기억하는 모습도 그렇겠지만, 특히 저희 아버지는 그림을 빨리 그리는 속사의 명수셨죠. 그런데 그게 보기엔 신기하지만 사실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그릴 대상과 동작까지 구체화시켜야 가능한 일이니까.”
신 화백의 아들인 신찬섭 제일기획 전문위원(54)의 기억에는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조금이나마 왕년의 팬들과 공유하기 위해 신 화백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알리는 작업을 틈틈이 하고 있다. 2002년 홈페이지를 만들어 신 화백 관련 자료를 소개하기 시작한 그는 현재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추억을 찾아 방문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풍운아 홍길동> 2분 만에 완판
고전 서적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저렴한 가격으로 찍어 보급판으로 배포하는 사업을 진행해온 사단법인 올재는 고전만화로는 처음 복간하는 작품을 신 화백의 대표작 <풍운아 홍길동>으로 선정했다. <풍운아 홍길동>은 1995년에 이어 2013년에도 복간된 적이 있지만 절판돼 정가의 3~4배 가격으로 웃돈을 줘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원조 ‘국민 만화가’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번 올재판 <풍운아 홍길동> 구매행렬에도 팬들이 몰려 인터넷 판매분은 개시 2분 만에 동이 났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완판 기록을 재연했다. 신 위원은 “올재 쪽에서 창립 10주년과 그동안 발간한 고전도서가 100만권을 돌파한 기념으로 <풍운아 홍길동>을 찍겠다고 하길래 복간을 바라는 팬들의 심정을 생각해 흔쾌히 동의했다”며 “아버지 자료로 상설전시장을 갖추는 오랜 꿈이 있었는데 이번에 함께 열린 온라인 전시를 통해 보다 많은 자료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1953년 피란을 간 부산에서 펴낸 첫 작품 <땃돌이의 모험> 이래 1990년대까지 40여년간 왕성한 활동을 한 신 화백은 <풍운아 홍길동>과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동명의 만화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역사학습만화인 <한국의 역사> 시리즈를 비롯해 각종 정부 정책 홍보만화나 기업 광고만화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친숙한 만화가였다. 응용미술학과를 나온 그의 작품활동은 비단 만화에만 국한되지 않아 한국의 전통을 그린 풍속화와 세계 각국의 명소를 그린 풍경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는 11월 20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도 신 화백이 생전 중국과 프랑스, 독일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려낸 풍경을 창작 당시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국민 캐릭터 ‘독고탁’ 탄생 50주년
신 화백이 교양·오락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친숙한 인상의 만화가로 자리 잡았다면,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은 만화 캐릭터 ‘독고탁’은 한 시대 ‘국민 캐릭터’ 입지를 굳건히 지킨 추억의 만화 속 인물이다. 고 이상무 화백(본명 박노철·1946~2016)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독고탁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만화계에서 회자하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지난 11월 3일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선 독고탁 50주년 기념 공연이 펼쳐졌다. 이두호 화백부터 이현세, 장태산, 이충호 만화가 등 이상무 화백과 독고탁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동료 만화가들이 작고한 이 화백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를 전한 뒤 이 화백의 딸 박슬기 독고탁컴퍼니 대표(39)가 무대에 올랐다.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아빠 말하길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박 대표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쓴 가사로 노래를 불렀다.
이 화백은 1965년 첫 작품 <노미호와 주리혜>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독고탁 캐릭터의 원형은 이 작품 속 ‘노미호’의 외모에서도 발견되지만 처음으로 독고탁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1971년부터였다. 박 대표는 “엄밀히 말해 독고탁이란 캐릭터가 탄생한 시점은 1971년 <주근깨>부터인데 만화로 출간된 시점은 1972년”이라며 “그래서 독고탁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을 내년까지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아버지의 작품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문화콘텐츠업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독고탁에서 이름을 딴 극단과 공연장까지 마련해 북콘서트 등 독고탁 관련 캐릭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화백의 인기작을 다시 책으로 펴내는 복간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작 <달려라 꼴찌>가 이 화백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14년 한차례 복간되긴 했으나 1부만 출간됐던 아쉬움이 있어 2017년 1·2부를 함께 펴냈고 이듬해엔 <울지 않는 소년>이 다시 나왔다. 독고탁 50주년을 맞는 올해엔 <아홉 개의 빨간 모자>가 나왔고 이어서 <주근깨>를 복간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작가였고 독고탁이라는 캐릭터의 힘만으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만화계의 중심에 있던 이 화백이지만 딸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많다. 무엇보다 육필 원고를 비롯해 많은 자료가 사라져 행방을 찾기조차 어려운 점이 안타깝다. “상·하권으로 출간됐던 <주근깨>의 상권은 아버지의 다른 자료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었지만 하권을 찾지 못해 공고문에 현상금까지 걸며 찾아나설 정도였어요.” 박 대표는 우여곡절 끝에 <주근깨> 하권을 소장하고 있다는 수집가와 연락이 닿아 겨우 하권 분량을 스캔해 복간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성대한 생일잔치 대신 조촐한 행사로 아쉬움을 달랬던 독고탁 50주년 기념사업도 점차 속도를 붙여가고 있다. 미뤄뒀던 전시를 다시 기획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화백과 독고탁을 추억하는 ‘올드팬’들의 성원이 예상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키 작고 볼품없는 독고탁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화백의 메시지가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향을 얻을 정도로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박 대표는 해석했다. “허무맹랑한 만화 같은 위로 대신 ‘그래도 괜찮다’는 현실적인 위로의 메시지가 공감을 부르는 것 아닐까요.”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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