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저감·기아 문제 해결 열쇠로 떠오른 식용곤충
마카롱·쿠키로 재탄생..곤충순대 퇴장은 아쉬움
혐오식품 오명 속에서도 국내선 연구·개발 활발
14일 전북 전주시 농촌진흥청 내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실에 식용곤충인 갈색거저리 분말 '고소애'를 첨가해 만든 마카롱이 놓여 있다. 전주=한지은 인턴기자
마카롱에서부터 수제쿠키와 브라우니에 에너지바까지.
탁자 한편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간식에 눈부터 휘둥그레졌다.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게 진열된 간식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게 만들었다. 연신 셔터만 눌러 댄 기자들 모습에 '간식 주인'은 "허허, 드셔보세요"라며 인심 좋게 화답했다. 덕분에 입안으로 스며든 마카롱은 순식간에 달콤한 맛을 선사했다. 잇따라 맛을 본 쿠키에선 분말과 견과류의 찰떡궁합이 확인됐다. 간식 주인이 내준 원두커피를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디저트 카페가 아닌 연구실에서 맛본 이 간식들의 주 재료는 모두 곤충이다. 지난 14일 전북 전주시 농촌진흥청 내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만난 '간식 주인' 황재삼 곤충양잠산업과 연구관은 “모두 ‘고소애’로 만든 제품들”이라고 전하면서 “곤충을 소재로 만든 간식에 덧씌워진 혐오식품이란 딱지를 뗄 때”라고 했다. 황 연구관이 소개한 고소애는 '고소한 맛을 가진 애벌레'로 알려진 갈색거저리(밀웜)의 애칭이다. 갈색거저리는 2016년 흰점박이꽃무지 유충, 쌍별귀뚜라미, 장수풍뎅이 유충과 함께 일반식품원료로 인정받아 지금은 일반 식품들과 똑같이 구매할 수 있다. 황 연구관은 “고소애로 만든 쿠키나 에너지바는 시중에도 꽤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14일 전북 전주시 농촌진흥청 내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실에 식용곤충인 갈색거저리 분말 '고소애'를 첨가해 만든 간식들이 놓여 있다. 전주=한지은 인턴기자
‘탄소 절감’ 역군으로 주목받는 곤충식품
2008년 유엔 산하 세계농업식량기구(FAQ)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개최한 워크숍 주제를 ‘식량으로서의 곤충: 이제는 인간이 깨물 차례’로 정했다. 21세기 들어 연구가 활발해진 곤충식품의 가치를 ‘각잡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주목한 곤충이 지닌 영양성분은 바로 단백질. 황 연구관에 따르면 다진 쇠고기 100g 속에 함유된 단백질은 24.7g인데, 일반적인 곤충 애벌레 100g에는 28.2g 정도의 단백질이 들어있다. 곤충 애벌레를 통해, 쇠고기보다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식품학계에선 단백질 생산 효율에 관한 한 곤충이 육류보다 높다고 본다. 재작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에서 발간한 ‘식품산업과 영양’에 따르면 식용곤충은 기존 육류와 비교했을 때 꽤 많은 경쟁력을 지녔다. 기존 육류가 ‘사육 후 도축’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되는 반면 식용곤충은 일정 공간에서 키운 뒤 ‘건조 및 분말화’만 거치면 된다. 육류를 얻기 위해 투입된 사료용 곡물 등을 포함한 생산비 절감이 가능하다. 특히 축산업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식용곤충은 ‘미래 식량’으로 꼽힌다.
황 연구관은 “곤충은 전 세계적으로 130만 종이 서식하고, 전체 생물군의 70% 이상 차지할 정도로 다양성도 높다”며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유럽연합 등이 곤충을 미래식량대체자원으로의 가치를 높이 여기고 정책적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지상 최대의 미활용 자원이자 소재화 가치가 높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에서 배우들이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양갱을 먹고 지낸 장면이 그려진 점을 두고 황 연구관은 “영화 제작진이 과학적인 검증을 꽤 하고 넣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곤충이)영양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식품인 점은 분명한데, 하필 일상에서 가장 기피하는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장면에서 혐오감이 생길 순 있었다”고 했다.
황재삼 연구관이 14일 전북 전주시 농촌진흥청 내 연구실에서 갈색거저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전주=한지은 인턴기자
14일 오후 전주 덕진구 농촌진흥청 내 연구실에 갈색거저리가 놓여 있다. 전주=한지은 인턴기자
추억의 음식과 혐오식품 사이… ”인식 개선 과제”
설국열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식용곤충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는 혐오식품이란 딱지를 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는 간식 삼아 메뚜기 잡아 구워 먹던 추억을, 또 다른 누군가는 운동회나 수학여행 때 종이컵 한 가득 번데기 담아 먹던 추억이 있을 정도로 곤충은 우리 일상과 거리가 가까운 식품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생김새에서 나온 거부감이나 유해 곤충의 경험에 따른 안전성 및 위생 우려 등으로 일상과 멀어지면서 '혐오식품'이란 부정적인 인식까지 더해졌다.
최근 수년 사이 곤충으로 개발한 식품 가운데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시판됐던 ‘곤충순대’의 퇴장은 그래서 더 아쉽다. 약 5년 전, 맛도 영양도 다 잡은 식품이란 평가와 함께 충북 청주시에서 인기리에 판매됐지만, 지난해까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혐오식품이란 인식이 확산됐고 결국 장사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연구관은 “식감도 굉장히 좋았고, 순대의 느끼함을 잡아줘 인기가 많았던 걸로 안다”며 “특히 조미료 대신 고소애를 넣어 건강에도 좋았던 터라 언젠간 재평가를 꼭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판매돼 왔던 곤충순대. 글로벌푸드 제공
“지금도 식용곤충은 인류를 구하고 있다”
식용곤충은 식량 안보 위기 해결에도 중요한 열쇠로 주목되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세계은행에선 한국의 식용곤충 개발 및 산업화 기술을 매우 높이 보고, 아프리카 분쟁접경지역 기아 해결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남수단에 국내 식용곤충 식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향후 케냐와 말라위, 짐바브웨 등에서 아프리카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체계화 된 곤충 사육기술을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곤충을 이용한 의약품 소재 개발도 활발하다. 곤충 내 생체방어물질의 구조를 분석, 개량하고 안전성 조사를 철저히 한 다음 시중에 판매하는 식이다. 국내에선 애기뿔소똥구리로부터 얻은 ‘코프리신’이란 물질을 분리해 만성 장염을 치유하는 효능을 확인한 바 있고, 최근엔 고소애 분말이 50% 함유된 탈모억제영양제 ‘이너부스터’가 시판에 들어갔다. 황 연구관은 ”우리가 곤충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0년쯤엔 곤충농가가 500곳도 채 안 됐지만, 지금은 귀촌·귀농 인구가 곤충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3,000곳 수준으로 늘었다”고 했다. 이어 “향후 곤충식품을 활용한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며 “브랜딩과 판로 확대가 과제”라고 조언했다.
전주=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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