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동일한 성상, 당장 내연기관에 넣어도 돼
100년 역사 가졌지만 경제성 극복이 발목
친환경 기술 개발로 새로운 시대 열리나
독일 자동차기업 포르쉐는 지멘스와 손잡고 2026년에 연간 5억5,000만 L 규모의 이퓨얼 생산을 목표로 칠레에 통합 플랜트를 건설 중이다. 포르쉐 제공
최근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선언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은 화석연료를 쓰는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에 이어 기아는 2035년부터 유럽에서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만 판매하겠다고 지난 11일 선언했다.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은 퇴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합성연료 '이퓨얼(E-Fuel)'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퓨얼은 전기기반연료(Electricity-based Fuel)의 약자다. 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은 수소(H₂)와 대기 중 포집한 이산화탄소(CO₂)로 제조한 합성연료를 뜻한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는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탄화수소(H+C) 혼합물인데 이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이퓨얼이다. 촉감이나 질감이 일반 휘발유, 경유와 거의 똑같다. 제조 방법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물질이라 당장 내연기관 차량에 넣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이퓨얼의 발목을 잡은 건 낮은 경제성이다.
100년 전 발견된 제조 방법... '친환경 기술'로 탈바꿈
이퓨얼 제조의 기본이 되는 공정은 1920년대 독일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의 프란츠 피셔와 한스 트롭시가 개발했다. 이들의 이름을 따 '피셔트롭시 공정(Fischer-Tropsch synthesis)', 즉 FT 공정으로 불린다. 수소(H₂)와 이산화탄소(CO₂)를 일정한 압력에서 반응시켜 탄화수소(H+C)를 만드는 게 공정의 핵심이다.
당시 독일은 석유 자원이 부족했는데, 이를 석탄으로 대체하기 위해 석탄을 물(H₂O)과 산소(O₂)에 반응시켜 얻은 합성가스를 촉매를 사용해 액체상태의 탄화수소로 만들었다. 이 방법은 이후 천연가스를 원료로 디젤연료를 합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셸(Shell)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소르(SASOL) 등이 아직도 활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합성연료는 2차 세계대전 뒤 값싼 석유가 보급되면서 점차 잊혔다. 세계 패권을 잡은 미국과 러시아는 자국에 풍부한 석유를 놔두고 합성연료 개발에 힘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쇠락의 길을 걷던 합성연료가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독점에 대한 불안감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 등 친환경 기술에 대한 요구였다.
친환경 수소와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꿈의 연료'
이퓨얼 생산 방식.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퓨얼이 친환경 연료의 미래로 떠오른 건 이퓨얼의 재료가 되는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인공적으로 채집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다.
우선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DAC(Direct Air Capture) 기술이 실용화되고 있다. DAC는 흡수·흡착제를 사용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춰주는 기술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DAC 기술을 10년 이상 연구한 캐나다 카본 엔지니어링에 따르면 DAC 장치 한 대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은 10만 톤이다. 이산화탄소 10만 톤이면 약 2,460L의 이퓨얼을 생산할 수 있다.
공장이나 발전소 등 산업현장 배출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 기술도 향후 연구·개발을 통해 활용될 수 있다. 수소(H₂) 또한 풍력이나 태양에너지 등 친환경에너지로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생산이 가능하다.
이퓨얼은 완전연소 비율이 높아 기존 디젤차 대비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이퓨얼을 자동차 경유와 혼합해 사용하면 미세먼지 배출량이 57% 저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기나 선박 연료로도 사용 가능하고 석유연료 운송·보관시설 등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포르쉐·아우디 '이퓨얼' 개발 중... 낮은 경제성이 난관
포르쉐가 지난해부터 칠레에 짓고 있는 이퓨얼 생산공장 조감도. 포르쉐 제공
이퓨얼 개발에 발 빠르게 나선 건 독일과 일본이다. 당장 2030년 도입되는 LCA(Life Cycle Assessment) 기반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독일 완성차업체 포르쉐는 지난해 2,400만 달러를 투자해 에너지기업 지멘스와 함께 칠레에 이퓨얼 생산공장을 세우고 있다. 2026년부터 연 5억 L 규모의 이퓨얼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완성차업체들도 이퓨얼 연구에 적극적이다. 도요타와 닛산, 혼다는 지난해 7월 탄소중립 엔진 개발을 위해 이퓨얼 공동 연구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이퓨얼 개발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4월 30여 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퓨얼 연구회를 발족해 정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4일 덴마크 할도톱소(Haldor topsoe)사와 친환경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이퓨얼 공동 개발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도 2019년 기초선행연구소(IFAT) 설립 후 이퓨얼 제조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기술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퓨얼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이다. 한국화학연구원에 따르면 이퓨얼의 가격은 배럴당 200달러 수준으로, 현재 국제유가(배럴당 80달러)에 비해 2배 넘게 비싸다.
이는 수소를 생산하는 비용이 큰 탓이다. 일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에 따르면 이퓨얼 생산 시 필요한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수소를 위해 들어간다. 포르쉐는 향후 기술 개발에 따라 현재 L당 10달러 수준인 이퓨얼 가격이 10년 뒤에는 2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이퓨얼을 2040년 이후 장기 프로젝트로 다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수소, 전기자동차 생산체계 도입이 시작된 자동차보다 비행기, 선박 등 전동화가 어려운 수송 부문 전반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민경덕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퓨얼은 '꿈의 연료'라기보다 다양한 에너지 포트폴리오 확보와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면서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연료 표준화, 촉매 개발에 대한 적극적 투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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