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끈 ‘개혁 군주’로 꼽힌다. 능력 있는 인재를 중시해 계파와 신분을 초월한 탕평책을 펼쳤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백성을 존중하고 세심하게 배려했다.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규장각을 설립한 정조의 치세를 유럽의 르네상스와 비견하기도 한다.
경향자료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만큼은 최악이었다. 정조는 술에 취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마셨고, 음주를 강요하는 버릇이 있었다. 건배사는 늘 불취불귀(不醉不歸)였다. ‘백성 모두가 풍요롭게 살면서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아름다운 뜻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신하들에게는 말 그대로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 ‘두발로 걸어나가는 일은 없다’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정약용은 세 번 증류한 독하디독한 소주가 가득 담긴, 옥필통만 한 술잔을 정조로부터 받아 들고 ‘오늘 죽었다’ 생각했다고 한다. 이때 어찌나 질렸는지 아들들에게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고, 특히 ‘원샷’은 피하라고 신신당부한 기록도 있다.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과 연말이 만나 회식이 잦아진다. 술자리가 눈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먼저 술을 마시게 되면 충혈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이 안구에 미세하게 분포하고 있는 모세혈관을 팽창시키기 때문이다. 더구나 술집의 경우 환기가 잘되지 않고, 음식 연기가 가득하므로 더욱 충혈이 빠르고 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충혈은 충분한 휴식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반복되는 과음은 또 다른 문제다. 망막질환의 위험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고지혈증과 당뇨를 유발해 망막혈관에 장애가 일어나고 망막 손상으로 이어져 당뇨망막병증이나 황반변성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회식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눈 건강에 미치는 좋지 않은 영향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물과 음료를 충분히 마시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알코올을 분해할 때, 수분을 사용한다.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 심한 갈증과 안구건조증을 겪게 되는 이유다. 안구건조증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각막과 결막이 손상되고 안검염, 각막염 등의 안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실 때는 물과 음료를 함께 섭취해 충분히 수분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박영순 안과전문의
두 번째, 가급적 몸에 좋은 안주를 고르는 것이다. 튀긴 음식이나 맵고 짠 음식은 피하고 눈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한 녹황색 채소, 해산물 등을 선택하자. 특히 나트륨은 혈압, 안압을 높이고 안구 내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이는 시신경과 망막 손상으로 이어져 녹내장, 황반변성을 유발할 수 있다. 가능하면 국물 섭취를 줄이고 건더기 위주로 먹어 나트륨 섭취를 줄여야 한다.
세 번째로 원샷을 피하도록 하자. 많은 양의 음료나 술을 한 번에 마시면 안압이 높아져 눈 속 시신경이 압박을 받는다. 이런 시신경 압박이 반복되면 만성 녹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술은 천천히 나눠 마시는 것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술과 담배를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알코올과 니코틴이 몸에 들어가면 서로의 흡수를 돕는 작용을 해 각종 질병 위험을 높인다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회식에서는 정조 반대로 하자.
박영순 압구정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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