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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기운 꿈틀대는 계룡산의 '만추'

부동산 분양정석 2021. 11. 30. 13:51

계룡산 산사 모습

[헤럴드경제=홍승완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의 시 '풀꽃'의 한 구절이다. 이 글귀와 맞을 법한 명산이 있다.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계룡산이다.

계룡산(鷄龍山)의 이름은 새벽을 알리는 '닭(鷄)'의 산, 비바람을 몰고 오는, 불국정토(佛國淨土)로 인도하는, 나라의 임금을 뜻하는 용(龍)의 산에서 유래했다.

계룡산 전경

차령산맥의 연봉으로 충남 공주시, 논산시, 계룡시, 대전광역시 유성구 등 여러 고을에 두루 걸친 계룡산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여느 산과 그리 다를 바가 없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금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계룡산을 '이 나라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명산' 중 하나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중환은 개성 오관산, 한양 삼각산, 문화 구월산, 진잠(대전시 유성구의 옛 지명) 계룡산을 4대 명산으로 지칭했다.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도 한시에서 계룡산을 칭송했다. 그는 '계룡산 높고 높아 푸른 층층 솟았는데, 맑은 기운 굼실굼실 장백산서 달려 왔네, 산에 못이 있으매 용이 살고, 산에 구름이 있으매 만물에 덕을 주네.… 용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용을 따르더라'고 읊었다.

실제 충남의 너른 들을 니엄니엄 적시며 금강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샛강을 품은 계룡산엔 유서깊은 사찰과 진귀한 전설을 가진 유적가 적지 않다.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가 대표적인 사찰이다.

특히 용화사는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절이다. 매년 가을, 가지에 휘어지게 열리는 감을 따는 비구니들의 속세를 잊은 해맑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용화사 근처엔 암용추와 숫용추도 있다. 남녀의 성기를 닮은 암용추와 숫용추는 계룡산의 암용과 숫용이 도를 닦아 승천했다는 화강암 바위에 든 물웅덩이다.

신비로운 힘이 있고, 심신이 고달파 신의 힘에 기대고 싶은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계룡산의 길은 대개 동학사에서 시작된다.

백제의 한 왕족과 상주 처녀의 사랑, 불심을 간직한 남매탑인 오뉘탑을 둘러보고 갑사로 향한다면 계룡산의 만추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계룡산 신원사 전경

갑사는 '추갑사'로 불릴 만큼 가을 경치가 장관이다. 반드시 가을이 아니어도 계룡산의 산행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용이 노는 연못이라는 용유소 등 '갑사 구곡'은 옛 문인들도 즐겨 찾던 영혼의 쉼터였다.

백제 의자왕 때 보덕 화상이 세웠다는 신원사는 조선시대 나라의 산신제를 올렸다는 중악단이 딸려 있다. 신원사는 이성계가 임금이 될 것이라는 꿈 풀이로 천기를 누설한 '팥거리 할머니'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계룡산 남쪽 마을인 신도안은 조선 건국 초기 도읍으로 정해졌던 곳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고 이곳을 수도로 삼으려 했다. 당시 땅에 박아 둔 왕궁 초석 105개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된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과 풍수도참설에는 '난을 피하기 가장 좋은 10곳' 중 한 곳으로 신도안을 꼽았다. 이 때문에 신도안엔 재난을 피하려 팔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계룡산 신원사에서 여행객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계룡산은 고대로부터 우리나라의 성산으로 꼽혔다. 통일신라 때는 서악으로, 신라 5대 명산에 들어 해마나 국가 제사를 계룡산에서 지냈다.

조선시대엔 묘향산에 상악단을, 지리산에 하악단을, 계룡산엔 중악단을 세워 매년 봄과 가을에 나라의 제사를 올렸다.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는 영험한 계룡산 신원사에서 아들 점지와 왕실 번영을 빌었다. 계룡산은 명성황후에게 아들 순종을 점지해줬다.

계룡산을 찾는다면, 이성계와 명성황후의 기도처인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 들러 우국이세(祐國利世·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이롭게 한다)의 기도를 부처님께 올려봄이 어떠할까.

월명스님

글. 월명사 주시 월명스님

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