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선 맨드 클라우드
장마리 마소 (Jean-Marie Massaud)
■ 최경원의 지식카페 - ⑫ 장마리 마소
‘비행선 맨드 클라우드’ 고래 연상케 하는 거대한 공중호텔… 신비로운 은유적 표현에 문학적 감동 불러일으켜
‘긴의자 터미널’ 바로크·로코코 시대의 고전적 장식미 연출… 토요타 콘셉트카 ‘미위’ 자신 특유의 정신세계 구현
세상에는 참 다양한 디자이너가 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형태를 잘 만드는 사람도 있고 아이디어가 탁월한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 장마리 마소(Jean-Marie Massaud) 같은 디자이너는 심오한 정신성을 디자인에 표현하면서 디자인을 철학의 경지에까지 올려놓는 사람이다. 그의 디자인을 보면 디자인은 단지 디자인이 아니라 색과 형태로 쓰인 철학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디자인한 소파 에어버그가 그렇다. 소파의 형태를 지지하는 아무런 구조물이 없어 다른 오브제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은 소파다. 두꺼운 펠트 천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스펀지로만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이 소파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소파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구조물 위에 부드러운 쿠션이 결합된 소파의 전형적인 모습은 이 에어버그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것은 흡사,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하면서 중세의 종교관을 극복하고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었던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행보와 닮아 있다. 이 소파에서 또 하나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불규칙한 모양이다. 비대칭적인 구조와 불규칙한 형태는 마치 공기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바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이 에어버그 소파가 향하고 있는 곳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는 직선도 없고, 기하학적인 형태도 없다.
최근에 그가 디자인한 수전 에지는 에어버그 소파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이 수전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극도의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디자인돼 있다. 그렇다고 20세기 기능주의 디자인의 건조한 기계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부분의 늘씬한 모양과 작고 단단하면서도 우아해 보이는 육면체 덩어리 모양과 어울려 있는 레버 부분의 대비감은 20세기를 훨씬 넘어서서 중세의 수도원이나 엄격한 절대왕정 시대를 초대한다. 단지 수전일 뿐이지만 엄격한 자기 수련과 절제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지면서도 그 안쪽에는 고전적 장식성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가 디자인한 조명 루이스에는 프랑스적 감수성이 빼어난 정신성과 함께 잘 표현돼 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여성 치마를 연상케 하는 조명의 형태에서 이미 지극한 낭만주의적 감수성이 흘러넘친다. 장마리 마소는 이 조명의 주된 역할이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은은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조명 빛과 간간이 촛불처럼 진동하는 빛의 움직임이 전기가 없었던 시대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에, 이 조명을 사이에 두고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낭만적 분위기의 우산을 같이 쓰게 된다. 게다가 이 조명이 빛을 발하는 동안 청아하고 로맨틱한 종소리 연주음도 흘러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런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 정도면 루이스는 그냥 조명이 아니라 인간을 돕는 요정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조명 윗부분의 둥근 구조물은 조명의 형태를 부드럽고 우아하게 마무리해주는 중요한 조형적 포인트이기도 하며, 이동할 때 손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하는 부분이지만 어쩐지 요정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앉을 수도 있고 옆으로 누울 수도 있는 긴 의자 터미널1은 장마리 마소의 프랑스적 감수성과 뛰어난 조형능력이 아주 잘 표현된 가구다. 일반적인 의자와는 달리 침대처럼 긴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자세를 모두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런 기능적인 이유를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표현해 놓았다. 등받이를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흘러 내려가는 곡선과 곡면들의 부드러운 흐름은 하나의 가구이기 이전에 완벽한 조각품이다. 순수 조각품도 이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사용하는 물건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 의자는 앉거나 누워보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해도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이렇게 우아하게 흐르는 곡면의 이미지는 일반적인 유선형의 형태들이 첨단의 기술을 지향하는 것에 비해 프랑스 특유의 곡선적 장식미를 연상케 한다. 그 어떤 걸림돌 없이 진공 속을 흐르듯 유려하게 빠져나가는 곡면의 흐름에서는 바로크나 로코코 시대의 고전적 장식미나 아르누보 시대의 자유롭고 표현적인 장식미가 잔뜩 실려 있다.
아이빔은 건축물의 구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철골 재료 중 하나를 말한다. 집의 구조를 철재로 만들 때 둥근 기둥 모양보다도 단면이 알파벳 I자 모양인 철 기둥을 쓰면 재료를 적게 사용하면서도 더 큰 강도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현대 건축에서 아이빔은 건물의 뼈대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장마리 마소는 그런 건축재료의 구조를 거의 눕다시피 하는 의자에 응용해 더없이 조형적이고 품격 있는 디자인을 만들었다.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거친 재료의 구조를 적용해 럭셔리한 가구로 재탄생시킨 장마리 마소의 은유적 디자인 능력이 두드러져 보인다. 정신적 가치를 디자인적 가치로 승화시킬 줄 아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읽을 수 있다.
장마리 마소의 지적인 디자인을 보다 보면 그가 엔지니어링의 비중이 높은 운송기기 디자인도 많이 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는 가구나 소품 외에도 많은 운송기기를 디자인했다. 토요타를 위해 디자인한 콘셉트카 미위가 그중의 하나인데, 이 자동차의 특징은 몸체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차의 주요 구조는 일반 자동차처럼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나머지 차체는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자동차의 가격이 대폭 절감될 수 있었다. 물론 강화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에 비해 강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탄력성이 좋아 안전 면에서는 더욱 유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자동차가 가진 플라스틱 특유의 질감과 형태는 일반적인 자동차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크게 끌 만하다. 게다가 차의 바닥은 마루처럼 나무로 깔아서 기존의 자동차와는 확실히 차별화하고 있다. 장마리 마소 특유의 정신성이 이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재료를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마리 마소가 거대한 헬륨 비행선까지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알면 과연 철학적 경향이 강한 이 디자이너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일단 이 비행선의 길이는 210m이고 폭은 82m, 높이는 무려 52m이니 어마어마하게 크다. 비행선 아래쪽에는 2층의 구조물이 부착돼 있다. 1층은 레스토랑과 라운지, 도서관 등이 있고, 2층에는 객실이 20개, 테라스와 스파, 바 등이 있다. 정말 거대한 공중 호텔이라고 할 만하다. 이 거대한 비행선은 유려한 곡면으로 이뤄져 있다. 고래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다. 거대한 대양을 헤엄치는 고래의 이미지를 비행선에 은유해 놓은 것은 매우 시적인데, 드넓은 하늘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고래 모양의 비행선은 첨단 기술 이전에 강력한 문학적 감동으로 다가온다. 실지로 이 비행선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장관이다. 거대한 비행선에도 신비로운 은유적 표현을 이끌어 내는 디자이너의 지적 능력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처럼 프랑스의 디자이너 장마리 마소는 다양한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특유의 지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들을 표현하고 있다. 상업성이나 기능성을 추구하거나 조형적 매력을 표현하는 디자이너들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와 개성을 보여주는 디자이너다. 세계의 수많은 디자이너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자기 세계를 가진 디자이너라 할 수 있다. 그의 발걸음은 그동안도 탁월한 면모를 보여 왔지만 앞으로도 대단히 많은 정신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눈과 마음을 놀라게 할 것이 분명하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장마리 마소 (Jean-Marie Massaud)
- 1966년 9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출생
- 1990년 프랑스 국립고등산업디자인학교(ENSCI·Les Ateliers) 졸업. 졸업 후 마크 베르티에르(Marc Berthier)와 작업
- 2000년 다니엘 푸제(Daniel Pouzet)와 스튜디오 마소(Studio Massaud) 공동설립
-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Domus Academy)와 토리노 유러피언인스티튜트오브디자인(European Institute of Design)에서 강의
- 2011년 MDF이탈리아의 예일(Yale) 소파로 황금콤파스상(ADI Compasso d’Oro) 수상
- 2014년 월페이퍼디자인어워드에서 폴트로나프라우(Poltrona Frau)의 그란토리노(GranTorino) 모듈식 소파 컬렉션으로 ‘베스트룸메이트(Best Room Mates)’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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