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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전달 못하는 이미지를 실시간 전송.. 1980년대 사무자동화 주역

부동산 분양정석 2021. 12. 13. 10:44

주로 기업체를 대상으로 기사를 제공할 목적으로 도입돼 운영하던 1980년대 초기의 골드맥스 4600 팩시밀리. 연합뉴스

1990년대 초 연간 30만 대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규모 삼성전자 구미 팩시밀리 공장 작업 모습. 연합뉴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잡지 ‘에피’편집위원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⑧ 팩스

원본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전기 신호로 바꿔 전달한 후 그대로 모사하는 장치… 1843년 英서 고안된 뒤 日서 대량 보급

인터넷 대중화되며 서서히 찬밥 신세 전락했지만 日선 지금도 주요 통신수단으로 애용… 단순하고 직관적인 게 강점

작년 4월쯤 사용하던 명함이 다 떨어져 학과 사무실에 제작을 부탁했다. 국립대답게 양식에 내용을 채워 제출하면 계약된 업체에 의뢰해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이름, 소속부서, 직급, 전화번호, 이메일 등을 채워 넣다 보니 팩스 번호를 쓰는 난이 있었다. 내게 써넣을만한 팩스번호가 있던가? 다시 학과 사무실에 물어보니 공용 팩스가 있고 번호도 있는데 요즘은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쨌든 그 번호를 기입하고 나니 왠지 주어진 양식을 충실하게 채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또 팩스와 팩스번호는 내 명함 위에서 근근이 수명을 연장했다.

이제는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됐지만 1980~1990년대에 팩스는 복사기와 함께 이른바 ‘사무자동화(OA)’ 기기의 대표주자였다. 웬만한 사무실이라면 팩스가 있었고 이를 통해 업무와 관련한 문서를 주고받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팩스 번호로 잘못 전화를 걸어 귀를 긁는 듯한 (PC통신 연결음과 비슷한) 팩스 연결음을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팩스는 일반 전화선을 통해 화상(畵像)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따라서 비용을 절감하려는 자영업자는 하나의 전화선에 전화기와 팩스 기기를 번갈아 꽂아가며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팩스를 수신한 후 다시 전화기로 바꿔 꽂아 놓지 않았다면, 올바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한동안 업무 공간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팩스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서서히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해서 팩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여전히 팩스를 이용해 다양한 공적 업무처리를 할 수 있다. 올해 6월 일본 정부의 행정개혁회의는 정부 부처 내 팩스 이용을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재택근무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도 팩스를 보내거나 받기 위해 공무원들이 출근해야 하는 불합리한 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이메일을 이용하라는 권고였다. 담당 장관인 고노 다로(河野太郞)가 위와 같은 제안을 발표하자 수백 명의 공무원이 정부 업무에서 팩스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반발했다.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가 반대의 주요 논거였다. 개인정보나 국가기밀 등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 되는 정보를 다룰 때는 수십 년 동안 검증된 보안 통신선을 통해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는 것이 안전하리라는 것이었다. 결국 행정개혁회의의 팩스 퇴출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는 일본 사회, 특히 일본 공무원 사회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40여 년 동안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팩스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 정도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상에서 손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됐지만 오랫동안 유지해온 업무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에서만이 아니다. 2020년 일본 총무성에서 조사한 ‘정보통신기기 보유상황’에 따르면 50대 이상 고연령층의 절반 정도가 여전히 가정에 팩스 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 사회에 팩스가 여전히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에 있어 일본 사회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는 모습을 보통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팩스는 1843년 영국의 발명가인 알렉산더 베인(Alexander Bain·1810~1877)이 처음 고안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시계공이 되기 위한 도제 교육을 받았다. 당시 영국 전역에는 철도 네트워크가 가설되고 있었는데, 19세기 중반 이후 철도망이 점차 복잡해지면서 각 기차역에 정확한 시간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표준 시간에 맞춰 여러 노선의 기차가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끔찍한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베인은 전자석 진자(振子)의 전기신호를 전신선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전달해 두 시계의 시간을 동기화(同期化)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했다. 이를 이용해 각 기차역의 시계를 정확하게 동기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기 신호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기계장치를 동기화하는 기본 원리는 이후 그가 팩스를 고안해낼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팩스란 원본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달한 후, 그것을 그대로 모사(模寫)하는 장치다. 베인은 ‘전신 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자의 움직임으로 원본 이미지를 스캔하고, 그 움직임을 동기화해 다른 곳에서 그 이미지를 복원해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이후 ‘만들다(facere)’와 ‘같다(simile)’라는 의미의 라틴어 합성어인 ‘팩시밀리(facsimile)’로 알려지게 됐다.

팩스의 기본 원리는 19세기 중반에 등장했지만 그것이 상용화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1920년대 이후 일부 언론사에서 사진을 전송하는 데 팩스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해상도가 높아졌다. 1922년에 비오 11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의 사진이 곧 미국 신문에 실렸다. 경찰은 팩스를 이용해 범죄자 지문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렇듯 팩스는 문자나 음성으로 전달할 수 없는 이미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던 것이 전신선이 아닌 전화선으로 팩스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64년에나 가능해졌다. 복사기 전문 회사인 제록스(Xerox)가 ‘장거리 복사(long distance Xerography)’라는 기술을 내놓으면서부터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팩스 기기의 기원이었다. 현대식 팩스는 1970년대 이후 전성기를 구가한 일본 전자기기 회사를 통해 대량으로 보급됐다. 1980년대 중반 무렵에 전 세계에 유통된 팩스 기기의 절반 이상이 일본 제품일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값싸고 성능 좋은 팩스 기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상생활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세계전기통신지표에 따르면 1992년 당시 일본의 팩시밀리 보급 대수는 550만 대였다. 같은 해 미국은 600만 대였고, 한국은 30만 대에 불과했다. 일본의 인구가 미국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팩스가 보급됐는지를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팩스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문자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한자를 섞어 사용하는 일본어의 특성상 디지털화가 서구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표준으로 등장한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를 생각해 보자. 로마자 알파벳은 9개의 핀으로 모든 문자를 읽을 만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어 문자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4개의 핀이 필요했다. 이를 컴퓨터 모니터상에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에 불어닥친 개인용 컴퓨터 혁명이 일본에 도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개량과 추가적인 기술 개발을 요구했다. 팩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징검다리 기술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본의 광범위한 팩스 문화는 징검다리 기술이 지나치게 잘 작동했을 경우에 생기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렇게 일본 사회에 도입된 팩스는 디지털 컴퓨터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능을 넘어서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간단하게는 도시락이나 공연 티켓을 주문하거나 기차나 비행기 승차권을 예약할 때 팩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금융 기관에서 대출 심사를 위한 서류는 양식을 팩스로 받아 손으로 작성한 후 인감도장을 찍어 다시 팩스로 보낸다. 심지어 일본 공영방송인 NHK에서는 매주 생활정보를 정리해 시청자들에게 팩스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팩스는 여전히 50대 이상 일본인에게 대체 불가능한 일상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일본에서 팩스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인터넷이 제공하는 편의를 제공하는 인프라였던 것이다. 톰 스탠디지(Tom Standage)가 전신을 ‘빅토리아 시대의 인터넷’이라고 불렀다면 팩스는 ‘후기 쇼와(昭和) 시대의 인터넷’이었다.

2021년 현재까지 팩스가 그동안 사라진 다른 통신기기와 달리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기술이 단순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화선을 이용하고 중앙집중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선호출기나 2G 이동전화의 경우 제공 업체에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팩스는 전화 서비스 자체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내 명함에 담긴 팩스번호를 이용한 적은 없지만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과학잡지 ‘에피’편집위원

■ 용어설명

갈라파고스 신드롬 :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서쪽에 위치한 화산 섬 무리다. 1835년 찰스 다윈은 비글 호를 타고 이 지역을 방문해 진화론을 구상하는 데 필요한 기초 조사를 수행했다. 육지로부터 고립된 남태평양의 섬에 독특한 생태계가 만들어지듯이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돼 고유한 기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의 정보기술(IT) 산업의 특징을 갈라파고스화 또는 ‘잘라파고스(Japan + Galapagos)’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