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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식의 맥도날드化' 따라야 하나..스몰웨딩의 이유

부동산 분양정석 2021. 12. 23. 10:44

한국학중앙연구원 결혼문화 집중분석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서양식 웨딩드레스로 예식한 뒤, 부리나케 한복 갈아입고 폐백하는 짬뽕 결혼식을 굳이 따라야 할까.

전통혼례식에 익숙한 고령층이 보거나, 순백의 웨딩드레스로 사랑의 맹세로서 결혼식을 치르는 서양사람들이 보면, 한국의 결혼식은 ‘잡탕’이다.

최근 ‘두 가지 스타일의 한국 결혼식: 전통과 현대의 이중주’(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를 펴낸 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이를 부정적 의미의 ‘키치(Kitsch)’로 표현했다.

‘한국 전통도 아닌, 서양식도 아닌 것을 굳이 따라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MZ세대에 확산되면서, 최근 ‘개성 있는 스몰웨딩’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낮도 아닌 해질녘, 조선시대 복색으로, 제주 대평포구 어느 카페 앞바다에서, 많지 않은 사람들과 웨딩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MZ세대.

▶한국 결혼식과 맥도날드화= 주교수 연구팀원들은 이번 분석서를 통해, 흥미로운 한국결혼문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결혼예식장에서 서양식 예복을 입은 두 사람이 주례자 앞에서 본식을 치르고 난 뒤에 온돌방에서 한복을 입고 폐백을 드리는 풍경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묘하고 특이한 광경이다. 이러한 ‘동서양 결혼식 문화의 융합체’인 한국 결혼식은 19세기 말에 서양 선교사의 도래와 함께 서양식 혼례가 소개되어 우리나라 전통혼례와 접목된 이후 변화를 거듭한 결과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은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사회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경제적 유대망을 만드는 기제로 활용되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상업주의에 압도되어 전문장소에서 의례업체에 의해 주도되는, 간편성과 효율성을 지향하는 ‘결혼식의 맥도날드화’가 이루어졌다.

▶욕망의 웨딩드레스, 형식의 한복= 혼례복식은 ‘혼례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거나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신랑·신부의 의복과 장식 모두’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웨딩드레스’와 ‘한복’에 주목하였다.

웨딩드레스는 혼례의 시각적 상징물이다. 또한 혼례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일종의 기호이기도 하다. 웨딩드레스에는 신부의 ‘자기만족’과 ‘타인의 시선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치르는 본식은 모든 하객에게 개방되어 있고 주목의 대상이기 때문에 가성비에 대한 평가에서 매우 후하다. 비싸도 득템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폐백에서 입는 한복의 가성비 평가는 매우 경직되어 있다. 폐백이 가족 중심의 폐쇄적 의례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신부가 신랑 친척들에게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는 자리인 폐백이 동등한 혼인 관계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교수는 “웨딩드레스는 자기만족과 과시의 표현물로서 ‘욕망’이 강렬하게 투영되어 있는 반면, 한복은 시댁에 대한 예우와 체면의 상징물로서 최소한으로 갖추고자 하는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혼례음식= 혼례음식은 협의로는 ‘함떡·폐백 음식·이바지 음식 등 혼인 과정에서 음식 자체로 특별한 의미나 상징을 지니며 진설·교환·선물되는 것’을 지칭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는 ‘혼가에서 하객에게 대접하는 잔치(피로연) 음식’까지 포함한다.

폐백 음식은 과거 신부 어머니나 이웃, 친지가 마련하던 때보다 전문업체를 이용하면서 음식의 종류가 고급화되었으며 외관도 화려해졌다.

이바지 음식은 1980~1990년대에 성행하였으나 현재는 축소, 생략되거나 현금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신랑과 신부를 위한 큰상을 차리지 않으면서 이바지 음식의 의례적 의미가 약화되고, 혼인 피로연을 더 이상 집에서 치르지 않고 집에서 대접하는 규모도 줄어들어 필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피로연 음식은 다양한 연령과 지역, 계층의 하객들이 잔치 음식에 보다 만족할 수 있도록 뷔페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뷔페식 피로연에서는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조차도 같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음식을 먹기가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옆 테이블의 하객이 신부 집 손님인지, 신랑 집 손님인지, 아니면 다른 결혼식에 온 하객인지조차 알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피로연은 여럿이 모여 동시에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공식(共食)을 통해 ‘우리 의식’을 고양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눔으로써 사회적 유대를 공고히 하던 전통은 계승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탈정형화, 작은 결혼식, 결혼콘서트= 이런 혼례문화를 거부하고 ‘작은 결혼식’ 등 탈정형화된 결혼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주영하 연구팀의 한국혼례 분석서

주 교수는 이에 대해 “혼례의 상업화 과정에서 키치화된 한국의 예식 형태를 이제는 부자연스럽고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실제로 진행되는 서구식 예식을 접해온 최근의 젊은 세대는 한국의 전문예식장에서 연출되는 요소들을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혼종으로 받아들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의 일반적인 예식 절차가 내용이 분명치 않은 어떤 ‘가상의 문화적 원전’에 따른 ‘키치’일 뿐이라면, ‘키치’의 부자연스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된 젊은 세대에게 이는 굳이 따라야 할 문화적 전통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요즘 가족친지 메시지 교환 토크콘서트형, 문화공연형, 당사자가 참여하는 퍼포먼스형 등 MZ 결혼식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은 국적불명의 짬뽕, 키치 보다는 낫다고들 한다.

다만, 한국적 혼례의 가치와 철학을 어떻게 투영해내느냐가 한국식 결혼 전통이라는 정체성을 이어가는 관건이다. 물론 우리 MZ세대가 새로운 양성평등 혼례 문화를 정립해 나간다면, 이 역시 한국적이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