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정보

[여기 어때] 자연을 닮아가는 그림..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부동산 분양정석 2022. 1. 5. 09:58

맑은 하늘 아래 장욱진 미술관과 조각상 '히어' [사진/진성철 기자]

(양주=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도시가 싫었다. 산업화는 더욱 싫었다. 홀로 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예술과 살았다. 자연에 묻혀 살며 고독을 자처한 예술가 장욱진 이야기다. 심플하고 동화 같은 한국적 추상화를 개척한 서양화가다. 장욱진의 '초당·식탁·동물가족' 같은 작품과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경기도 양주 장흥계곡에 있다.

햇빛 맑은 날은 하늘색을 따라, 비 내리는 날은 산에서 피어오르는 비구름을 따라, 자연을 닮아가는 미술관. 하얀 호랑이가 산속에서 누워 편히 쉬는 형상의 집.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다.

맑은 하늘 따라, 비구름 따라

장욱진미술관과 정현 작가의 '서 있는 사람'. 철도 침목으로 만든 이 작품은 2월 말까지 전시 예정 [사진/진성철 기자]

일영봉, 응봉, 형제봉, 수리봉 등으로 둘러싸인 장흥계곡에 자리 잡은 미술관을 찾았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석현천의 물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 퍼지는 노래처럼 들리는 곳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1917~1990)을 기념하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개관한 해인 2014년에 영국 BBC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되고 김수근 건축상도 받았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남자친구'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비 내리는 날 청련사에서 바라본 장욱진미술관 [사진/진성철 기자]

미술관은 장욱진 화백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을 모티브로 최-페레이라 건축이 설계했다. 옆 산에 있는 태고종 사찰 '청련사'에 들르면, 장 화백의 그림을 보듯 미술관과 조각공원, 계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맑은 날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흰색의 미술관을 보는 것도 좋지만, 마침 비가 내린다면 꼭 청련사에서 미술관을 내려다보길 권한다. 멀리서는 산등성이를 넘어 비구름이 흘러내리고, 바로 뒷산에서는 호랑이 등을 타고 넘듯 흰 구름이 때때로 백색의 미술관 위를 지나간다. 비록 손재주가 없더라도 자신만의 수묵화나 한국적 추상화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버스정류장도, 조각공원도 동화 속 세계

버스정류장 '헬로우' [사진/진성철 기자]

석현교를 건너면 하얀 사람이 손을 들어 인사한다. 잎을 모두 떨군 두 그루의 벚나무 옆에서 큰 파라솔 펼쳐두고 잠시 여기에 들러보라며 '헬로우(Hello)'(나점수. 2017), 사람들을 부른다. 장욱진미술관 앞 버스정류장이다. 정문매표소 천정도 예술공간이다. 색색의 유리와 거울,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둥글게 모여 '우주정원'(신상호. 2018)이 됐다.

돈키호테와 장욱진 미술관 [사진/진성철 기자]

조각공원에는 요란한 색의 '돈키호테'(신상호. 2012)가 눈길을 끈다. 옆에서 보면 풍차에 돌진하듯 백호를 닮은 장욱진미술관에게 달려드는 모양새다. 사람 얼굴을 하고 선글라스를 낀 '고양이가족'(김래환. 2008)이 빙빙 맴을 돈다. 화려한 정장의 '고릴라'(설충식. 2008)와 분홍·민트색의 '풍선곰'(전강옥. 2011)은 파티가 열리는 연회장 분위기다. 열기구 모양 '하늘로 날아간 마법사'(이상길. 2011)를 새파란색 '기린'(금중기. 2008)이 바라보는 배치가 인상적이다. 그네를 탈 수 있는 뱀 '우와'(이호동. 2013), 빨강 노랑 파랑의 강아지 벤치 '해피'(김태식. 2018) 등이 어린이들을 동화 나라로 데려간다.

고양이가족 [사진/진성철 기자]

하늘로 날아간 마법사와 기린 [사진/진성철 기자]

미술관이 캔버스로 변했네!

아치형 다리 석현1교와 장욱진미술관. [사진/진성철 기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혜진과 두식이 아치형의 석현1교를 건너 미술관 언덕을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석현1교는 실제 보면 이곳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흠'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 뒤편인 여기에서는 망원경을 든 6m 높이의 사람 '히어(Here)'(나점수. 2012),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소년 '추억이 담긴 집'(김정연. 2012) 조각상과 같은 자세로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앞산과 미술관 창에 비친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나는 심플하다"라고 항상 말했던 장욱진의 화백 뜻을 기려 건물은 심플하게 건축됐다. 외벽은 하얗고 가벼운 특징을 지닌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었다. 빛에 따라 흰색, 민트색, 그리고 석양이 질 때는 불그스레한 색을 고스란히 담는다. 햇빛 맑은 날엔, 흰 외벽이 어른거리는 나뭇가지 그림자에 수묵화로 변한다.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진 커다란 창은 하늘과 산을 반사하는 풍경 사진이 된다.

'강가의 아틀리에' 벽화가 '계곡의 아틀리에'로

동물가족(1964) [사진/진성철 기자]

미술관 1층 주 전시실에는 기획전 '꽃이 웃고, 작작(鵲鵲) 새가 노래하고'가 이달 30일까지 열린다. 자연, 인간, 동식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최재천 교수와 함께 생태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장 화백의 '농장'(1981), '흰집'(1984) 등과 정현, 민병헌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는 '가족'(1976). '생명'(1984) 등이 전시돼 있다. 화가 장욱진에 관한 애니메이션 관람 등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와 생애 전반에 걸친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장욱진미술관이 소장한 230여 점의 작품 중 벽면에 영구 전시된 '동물가족'(1964)도 2층에 있다. 당시 양주군에 속했던 덕소의 화실 벽에 그렸던 그림으로, 벽 자체를 떼어내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림의 일부가 된 실제 코뚜레와 워낭이 함께 걸려 있다.

'식탁'(1963) [사진/진성철 기자]

계단에는 장 화백이 즐겨 그렸던 '작작새'가 있다. 작작새는 까치다. 지하에서 1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는 커피잔, 포크와 나이프, 생선 뼈다귀가 차려진 모던한 식탁이 있다. 회벽에 유채로 그린 '식탁'(1963)'이다. 이 작품 역시 '강가의 아틀리에'로 불렸던 덕소의 아틀리에 부엌에 그려진 벽화로 벽 자체를 떼어 이곳으로 가져왔다. 장 화백이 이 그림을 완성한 뒤에 "됐다, 오늘은 이것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자"라고 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식탁 풍경은 큰 창문 덕에 날씨에 따라 바뀐다. 미술관 중심에 지하 1층에서 2층으로 죽 이어지는 계단은 깔끔한 구도의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장욱진미술관 내부 계단과 창문 '식탁'(1963)

미술관 구경을 끝내고 다시 아치 다리를 건널 때, 장흥계곡에 바람이 잠시 멎었다. 석현천을 내려보니 물에 비친 미술관과 파란 하늘도 그림이다. 다시 불어온 바람에 잔물결이 일렁이면 풍경이 금세 사라진다.

장욱진미술관과 석현천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