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에 퇴거 요청한 실수요자들
전세금반환대출 막혀 보증금 내 주기 힘들어
한국경제 | 안혜원 | 입력2021.10.06 08:09
서울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붙어있는 부동산 매물 전단. /뉴스1
서울 강동구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A씨(34)는 11월 말 계약만료를 앞두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5억원가량을 돌려줘야 하는데 최근 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로 전세금 반환 대출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알려와서다. A씨는 “집주인이 직접 거주를 하겠다며 퇴거를 요청해 와 부랴부랴 집을 알아봤는데 이제 와 제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을지 모른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은행에서 당초 계획했던 대출 대부분을 내줄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다고 읍소하는데 일정대로 보증금을 받지 못할 경우 다음 전셋집의 계약금을 날릴 판”이라고 말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기 위한 정부 압박이 거세지면서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담보대출도 거절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기 집에 입주하기 어려워진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실수요자의 자금난은 더 심화할 수 밖에 없게 됐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임차보증금 반환용 주택담보대출이 거절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은 주택 구입 목적과는 거리가 있고, 세입자 보호와 직결된 대출이라 금융당국이 일부 예외를 인정해왔다. 하지만 최근 가계대출 규제가 워낙 강해지면서 받기 어렵게 됐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9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497조4175억원으로 연말까지 금융당국이 제시한 ‘6%’(가계대출총량 전년 대비 증가율)에 맞추려면 추가 대출 여력이 7조4754억원에 불과한 상태다.
서울 중구 KB국민은행 명동지점에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전세금 반환 대출은 통상 내 집 마련을 위해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거나, 자금 문제로 소유주택을 전세로 주고 본인도 전세를 사는 1주택자들이 전세 퇴거 대출의 주 수요자들이다. 주택가격의 일정부분과 전세보증금 중 더 적은 금액으로 받을 수 있다. 1주택자를 기준으로 서울 등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는 대출이 주택가격의 40%까지만 나온다. 심지어 2019년 12월16일 이후 매수한 주택이라면 집값이 15억원을 초과하면 대출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사 계획이 틀어질까 걱정하는 집주인들은 수시로 은행에 전화하거나 방문해 대출 가능 여부를 알아보는 상황이다. 노원구 중계동에서 세 낀 집을 사두고 올해 말부터 실거주 계획을 세우고 있는 B씨(47)는 “최근 반환대출을 받고자 은행에 문의했는데 대출 불가 판정을 받아 패닉 상태”라며 “이사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 다시 세를 줘야할 판으로 내 집에 들어갈 수 없고 시중에 전세도 없는데 이제 어디서 거주해야하나 불안해 죽겠다”고 호소했다.
일부 집주인들은 한 두달 전 미리 반환대출을 받아 계약 만료일에 앞서 보증금을 지급한 경우도 있다. 전세금은 미리 돌려주되 거주는 계약일까지 보장하는 것이다. 구로구 구로동 아파트를 전세로 놓았던 집주인 C씨(33)도 12월 전세 만료를 앞두고 9월 달에 미리 보증금을 내줬다. 대출이 막힐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계약 만료일이 한참 남았지만 대출을 먼저 받은 것이다.
C씨는 “세입자가 주소 이전 등 서류 상으론 퇴거했지만 계약 만료일까지 거주를 보장해주기로 하고 미리 보증금을 내줬다”며 “보증금을 내주고도 내 집에 3달가량 입주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출 이자도 몇 달 치를 더 내는 셈"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언제는 실수요자들의 보호하겠다더니 갑자기 하루아침에 대출을 막아버리면서 자금이 부족한 수요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황당해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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