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기자 입력 2021. 10. 26. 14:10 수정 2021. 10. 26. 14:29
“나의 첫 스승은 교도소 수용자”…공중보건의 생활 3년 담은 에세이 펴낸 89년생 최세진 수련의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
나이 스물아홉에 의사가 됐다. 그런데 근무지가 병원이 아닌 교도소다. 출근길엔 휴대 전화를 반납하고 여러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진료실 문을 열고 앉으니 머리를 빡빡 깎은 수용자들이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수용자들은 때론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일부러 기 싸움을 벌인다. 진료실 책상 밑에 호신용 테이저 건이라도 숨겨 둬야 하나 싶다. 하지만 주눅들 틈이 없다. 매일 80명의 ‘환자’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능숙한 직업인으로서 이들을 치료해야 한다. 3년 간 교정시설 공중보건의사로 일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어떤책)를 20일 펴낸 최세진 씨(32) 이야기다.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최 씨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와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체복무로 2018년 4월~2021년 4월 순천교도소, 서울구치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의사로 대체 복무를 하는 방법은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병역판정의사 등 크게 3가지다. 교정 시설은 공중보건의 중에서도 기피하는 곳이다. 700여 명의 공중보건의사 동기 중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이는 20명 내외였다. “교정 시설은 의사 한 명당 1인 진료가 하루 평균 277건에 달해 지원하려는 의사가 거의 없어요. 다른 곳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야 오는 곳이지만 전 1지망으로 교정시설에 지원했습니다. 부모님이 우려하고 선배들도 다 ‘절대 가지 마라’라고 말렸지만 순응적인 스타일이 아니라서 어떤 곳인지 더 궁금해졌어요. 겁이 없어서죠.”
그의 첫 근무지는 전남 순천시에 있는 순천교도소다. 수용자가 1500명에 달하지만 그가 유일한 상주 의사였다. 호기롭게 교정 시설에 지원했지만 처음 간 교도소의 스산한 느낌에 긴장되고 무서웠다. 살인범을 마주한 것도 이곳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곧 교도관이 항상 진료에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과도한 경계심을 내려놓으면서 수용자가 아닌 환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을 앓아 음식을 거부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고, 폭력 범죄 탓에 뇌 이상이 발견되고, 어릴 때 본드 흡입 후 약물에 손대기 시작한 수용자를 치료하며 병(病)은 환자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들이 불면증을 겪은 건 출소 후 뭐 먹고 사나 걱정해서였고, B형 간염에 걸린 건 가난 때문에 기초예방주사도 못 맞았기 때문”이라며 “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다보니 그들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수용자를 온정적으로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약물 오남용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했다. 정신질환자,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며 방 변경을 요청하거나 진통제나 약을 더 달라며 꾀병을 부리는 환자들도 가려냈다. 잠을 못자니 수면제를 처방해달라고 주장하는 수용자에겐 수면제를 처방하기 보단 수면 일기를 적어보도록 권했다. 고혈압, 당뇨 환자에게 무조건 약을 많이 처방하기 보단 왜 그 병이 위험한지, 식습관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계속 말했다. 어떤 수용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료를 소홀히 한다는 명분으로 고소하겠다고 소리를 질렀고, “최 선생한테 진료 안 받겠다”고 강하게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수용자들도 자신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선 진통제보단 삶의 교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갔다. 그는 “마약중독자들 중에 약을 줄이거나 끊는 수용자들을 볼 때마다 희망을 본다”며 “필요한 약만 주고 결국은 중독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의사로서 제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며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로서 내게 첫 자세를 가르쳐준 곳은 교도소이며 나의 첫 스승은 교도소 수용자”라고 했다.
소집해제 후 서울대병원 수련의로 일하고 있는 그의 퇴근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시작된 인터뷰는 오후 6시 20분 끝났다. 그는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헐레벌떡 돌아갔다. 교정시설에서 근무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환자를 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환자가 왜 병원까지 오게 됐는지 신체적 상태 뿐 아니라 배경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죠. 의사의 사회적 역할도 고민하게 됐고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수술에 관심이 많아 신경외과 전문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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