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이 대중성과 만났다.
국내 최대 미술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약 8만 8,000명이 방문했고, 총 판매액은 약 650억원이었다. 지난 2019년 판매액인 310억원의 2배를 넘는 규모다. 재테크 열풍이 불었던 올 한 해 동안 전례 없는 인기를 누렸던 투자처는 ‘아트테크’였다. 미술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데는 MZ세대의 역할이 크다. 명품 쇼핑에 주저함이 없는 ‘플렉스’가 곧 미술품 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 기업 UBS가 공동으로 발간한 <아트 마켓 보고서 2021>에 따르면 미국, 영국, 중국 등 10개국 컬렉터 2,596명 가운데 56%가 MZ세대였다. 문화의 일환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직접 작품을 사들이는 젊은 층의 움직임에 미술계도 작품의 접근성을 넓히고 있다.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고 경매에 올리는 것뿐 아니라 백화점, 호텔, 온라인을 통해서 말이다.
어떻게 시작할까?
아트테크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경매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경매시장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거장으로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유망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술 경매 거래액은 1,438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90억원)보다 3배나 급증한 셈이다. 지난해 전체 거래액이었던 1,153억원도 넘어서는 수치다. 아트테크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함이다. 주식, 비트코인 등의 재테크 수단에 비해 손해의 위험성이 적기 때문이다. 소장만으로도 가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도 아트테크의 매력이다. 이렇자 국내 대표 미술품 경매처로 꼽히는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은 많은 이의 눈길을 끌 만한 작가의 작품을 출품하는 데 열을 올리는 상황. 알려진 바에 따르면 두 회사가 올해 겨울 경매에 올리는 작품의 추정가는 약 220억원이다.
작품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제주 포토뮤지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전에서 NFT 작품 13점이 약 4억 7,000만원에 판매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NFT는 가상화폐처럼 블록체인을 활용해 만든 디지털 자산이다. 저작권 등 무형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상화폐와 다르다. 즉 고유한 가치를 지닌 디지털 자산으로 교환하거나 위조할 수 없는 토큰이다. 일종의 디지털 정품 인증서 같은 것으로, 미술계에서는 고가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은 이들이 부분적으로 작품의 소유권을 지니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미술의 대중화는 유통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화점, 호텔,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그림 판매에 나선 것이다. 신라호텔 서울은 11월 호캉스의 묘미를 살리는 데 목적을 둔 아트테크 패키지 ‘폴 인 아트’를 선보였다. 첫 출발을 함께한 작품은 박서보 화백의 ‘묘법’이다. 패키지 이용객에 한해 작품 ‘묘법 No. 071218’, ‘묘법 No.111020’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부여한다. 가격은 단 5만원이다. 매 경매에서 높은 낙찰률을 기록하는 화백의 작품이라는 점, 판매 기간 중 두 작품을 직접 전시할 수 있는 혜택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초기부터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백화점에서 미술품을 쇼핑하는 하나의 트렌드도 형성됐다. 롯데백화점은 프리미엄 판매전 <아트 롯데>를 시작으로 백화점에서 미술품을 전시·판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본점, 잠실점, 동탄점을 비롯해 총 6곳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구사마 야요이 작가의 ‘호박’. 연작 가운데 가장 큰 50호다.
제주 포도뮤지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전에서 전시된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방’.
요즘 가장 핫한 작가들
미술이 재테크의 수단이 됨에 따라 인기 작가들을 향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국내 작가로는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박서보부터 이우환, 김환기 등이 많은 이들에게 언급된다. 박서보 화백의 작품은 지난 10월 서울옥션에서 추정가가 공개된 것만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인 ‘묘법’ 시리즈는 3억~10억원으로 추정된다. 단색화의 아름다움에 세련미를 더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또 한 명의 ‘단색화 거장’ 이우환 화백. 국내 생존 작가 가운데 최초로 낙찰가 30억원을 넘기며 인기를 입증했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 중에서도 ‘동풍’ 시리즈를 향한 관심이 크다. 지난 8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우환의 1984년 작인 ‘동풍’은 추정가 20억보다 11억이 높은 31억원에 낙찰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이건희 컬렉션>에서 고 이건희 삼성회장이 선택한 작가로 다시 한번 그 저력을 확인받은 김환기 화백도 빼놓을 수 없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는 한국 화가 최초로 약 132억원이라는 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근현대 미술 경매 낙찰가 상위 10개 순위 중 9개가 김환기 화백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장 가치를 입증하기도.
해외 작가 중에서는 구사마 야요이와 조지 콘도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강렬하고 독특한 그림체를 자랑하는 구사마 야요이. 1타 강사 현우진이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에 빠져 직접 경매에 참여, 작품을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울옥션 경매에서 구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호박’ 시리즈 가운데 가장 큰 50호가 출품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작품은 연작을 시작한 1981년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크다. 이번 출품작의 추정가는 54억원으로 국내에서 거래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작가의 기존 최고가는 36억 5,000만원이다. 재치 있는 발상,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국내외의 사랑을 받는 작가 조지 콘도.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계승한 ‘신입체파’로 이름을 알린 그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작업실에서 조수로 일한 바 있다. 앤디 워홀이 사망했을 때 그의 침대 옆에 콘도의 그림이 있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조지 콘도의 작품은 케이옥션 겨울 경매에 오른다. 총 두 작품이 출품되며 추정가는 각각 6억 4,000만원, 8억원이다.
스타들이 다녀간 그 전시
리움을 사랑한
‘블랙핑크 로제’
삼성미술관 리움 재개관을 앞두고 그룹 ‘블랙핑크’ 로제가 자신의 SNS에 방문 인증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작품”이라는 글과 함께 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로제가 픽한 작품은 리움이 4년 만에 연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의 첫 번째 섹션에 전시된 론 뮤익의 ‘마스크Ⅱ’(2002). 1m라는 압도적인 크기의 이 작품은 편하게 잠든 남성의 모습이 극사실적으로 표현됐으며, 리움을 방문한 많은 이들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으로 꼽았다. 로제 외에도 그룹 ‘샤이니’ 키, ‘방탄소년단’ 뷔도 해당 작품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겼다.
<이건희 컬렉션>
‘방탄소년단 RM’
연예계에서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그룹 ‘방탄소년단’의 RM. 미술전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인증 사진을 비롯,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및 SNS를 통해 그림을 사랑하는 RM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에 진심인 RM이 다수의 인증 사진을 남기며 애정을 드러낸 것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이건희 컬렉션>이다. 그가 다녀간 전시는 ‘RM투어’라는 호칭으로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RM이 사진을 남긴 곳이 하나의 포토 존이 됐다는 후문.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VVIP
방탄소년단 ‘뷔’
그룹 ‘방탄소년단’ 뷔는 연예계 미술 애호가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스타다. 꾸준히 국내 최대 미술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 2019년에는 김봉수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찐사랑 면모를 뽐냈다. 뷔가 구매한 김봉수 작가의 ‘I am Pinocchio(아이 엠 피노키오)’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한편, 올해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에는 배우 전지현·이병헌·소지섭 등 국내 스타들이 방문했다.
에디터 : 김연주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옥션, 티앤씨재단, 키아프 서울 운영위원회, 각 연예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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