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상월대 서쪽에는 해학적인 모습의 백호(白虎·흰 호랑이) 석상이 있다. 백호는 사방을 지키는 신성한 동물, 즉 사신(四神) 중 서쪽을 지키는 신수다. 옛사람들은 호랑이가 역병을 물리친다고 믿어 신년이면 벽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곤 했다.
사진 위부터 범바위를 지나 인왕산 정상까지 올라서 바라본 북한산, 호암산의 호랑이 바위 기운을 누르고자 지었다는 절 호압사, 경기 안성의 복거마을 담에 그려진 담배 피우는 호랑이 민화.
■ 2022 설특집 - 가볼 만한 호랑이 관련 명소들
호랑이 자주 출몰하던 경복궁
근정전 ‘백호상’ 해학적 자태
종로 도시텃밭 등산로따라 20분
인왕산 범바위 일출·일몰 ‘일품’
관악산 서쪽 끝자락 호암산
이름부터 ‘호랑이 기운’과 연관
안성 복거마을 담벼락·지붕 등
곳곳에 호랑이 그림도 인상적
이제 곧 설날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두 번째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신년을 맞이하며 걸었던 기대만큼 시작이 좋으셨는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실망하지 마시길. 달력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은 신년에 바뀌지만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설날에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띠’입니다. 설날에 비로소 임인년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랍니다. 예부터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피邪)의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서울관광재단의 추천을 참조해 모든 액운을 떨쳐버릴 수 있는 호랑이 기운이 넘치는 곳들을 수도권에서 골라봤습니다.
# 역병을 물리치는 부적…경복궁 호랑이
민가까지 호랑이가 출몰하던 시절. 호랑이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궁궐 안까지 난입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에는 1405년 호랑이가 경복궁 근정전 뜰까지 들어왔고, 세조실록에는 이로부터 딱 60년 뒤인 1465년 창덕궁 후원에 호랑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북악에 가서 호랑이를 잡아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실록에는 또 1607년 창덕궁 안에서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을 내렸다고 적혀 있다.
호랑이가 가장 많이 출몰했던 궁궐은 경복궁이다. 북악산 자락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흔적은 남아 있을 리 없지만, 궁궐까지 숨어들어온 호랑이 얘기를 떠올리면서 경복궁을 돌아보면 색다른 기분이 든다.
경복궁에는 호랑이상도 있다. 궁궐에는 정전과 침전마다 월대(越臺)가 있다. 월대는 전각 앞쪽의 확장된 평평한 대를 가리킨다. 처마가 가리지 않아 달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라 해 ‘넘을 월(越)’이 아닌 ‘달 월(月)’ 자를 써서 ‘월대(月臺)’라고도 했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 정면의 답도에는 용과 봉황이 조각돼 있고, 상월대 동서남북 사방에는 사신상이, 하월대 난간 기둥과 상월대의 기둥 몇 개에 십이지상이 있다.
상월대의 사신상은 동서남북 각 방위를 지키는 동물이 새겨져 있다. 동쪽은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다. 백호, 그러니까 흰 호랑이는 서쪽에 있다. 근정전에 앉아 있을 때를 기준으로 오른쪽이다. 백호상은 머리도, 손발과 꼬리도 큼직큼직하다. 큰 얼굴에 왕방울만 한 눈, 흩날리는 수염, 뾰족한 어금니를 드러내며 해학적으로 웃고 있다. 역병이 일상이 된 시절. 예전에는 신년이면 집집이 호랑이 그림을 붙여 역병을 막으려 했다. 경복궁의 백호상 앞에서 새해에는 호랑이 기운으로 역병도 물러나고, 평화로운 한 해가 됐으면 하는 기원을 해보면 어떨까.
경복궁 근정전은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마주 보고 서 오른쪽 끝에서 뒤로 물러나 건물의 형태를 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다.
# 호랑이 전설을 따라 …‘인왕산’ 범바위
조선은 한양을 도읍지로 삼을 때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고 도성을 수호하는 진산으로 삼았다. 인왕산이 우백호라면, 좌청룡으로 삼은 건 낙산이었다. 풍수에서 백호는 재물을 상징하며, 바위는 곧 권력을 의미한다. 백호의 자리에 솟아 우락부락한 바위산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왕산이야말로 재물과 권력의 기운이 스며 있는 산인 셈이다.
지금도 깊은 숲은 아니지만, 무차별 벌목으로 헐벗었던 과거에는 더 황량했겠는데, 뜻밖에 인왕산에 호랑이 출몰이 잦았다. 깊은 산중의 호랑이가 민가까지 내려왔다는 건 그만큼 호랑이 개체 수가 많았다는 얘기다.
인왕산은 예부터 호랑이와 인연이 깊다. ‘인왕(仁王)’이란 산 이름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의 이름. 호랑이도 ‘어진 동물의 왕(仁王)’이라 여겨져 왔다. 재미로 사냥하지 않고 배가 부르면 먹잇감이 제 발로 걸어와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다.
인왕산에는 범바위가 있다. 범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범바위는 서울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종로구 도시텃밭’ 부근 등산로 계단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닿는다. 범바위는 일출도 좋고, 일몰도 좋다. 도시 야경을 굽어보는 훌륭한 자리이기도 하다. 범바위에서 인왕산 정상까지는 20∼30분 남짓. 정상을 딛고 부암동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 호랑이 기운을 눌러라… 호암산과 호압사
호암산은 관악산 서쪽 끝에 있는 해발 393m의 산이다. 산 하나의 이름이 그대로 ‘호랑이 바위(호암·虎巖)’다. 그 이름 유래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다. 그 대목을 읽어보자. “금천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가는 것 같다. 또 험하고 위태한 바위가 있어 호암이라 부른다. 술사가 보고 바위 북쪽에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하고, 그 북쪽의 다리는 궁교(弓橋·활다리)라 했으며 더 북쪽에 사자암(獅子菴)이 있다. 모두 범이 가는 듯한 산세를 누르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비보풍수의 전설이다.
호암산 정상은 민주동산 국기봉. 산행은 중턱의 절집 호압사(虎壓寺)에서 시작한다. 호압사는 말 그대로 ‘호랑이 기운을 누른다’는 뜻이다. 호압사와 관련해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그중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호압사 창건 유래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궁궐을 지을 때 어둠 속에서 몸의 반은 호랑이고, 나머지 반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눈에서 불을 뿜으며 궁궐을 무너뜨린다. 그날 밤, 태조가 상심하며 침실에 들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한양은 좋은 도읍지로다”고 말하며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노인은 호암산에 호랑이 기운이 있는데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 하니 산봉우리 밑에 사찰을 지으면 그 기운을 누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이에 태조는 무학대사에게 말을 전해 호압사를 건설하고 궁궐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다.
# 담배 피우는 호랑이…안성 복거마을
경기 안성에는 작은 호랑이 마을이 있으니 금광면 신양복리의 복거마을이다. 120여 가구가 사는 자그마한 마을은 ‘미술마을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담벼락과 지붕, 골목에 호랑이그림과 조형물로 장식됐다. 호랑이를 닮은 마을 뒷산이 앞의 작은 산을 향해 엎드린 형국이라 해서 ‘엎드린 호랑이’라는 뜻의 복호(伏虎)라 불렸던 옛 마을이름에서 착안해 진행된 작업이었다.
복거마을에는 온통 호랑이 일색이다. 슬레이트 지붕에도, 마을회관의 옥상에도, 시멘트 담벼락에도 그려지고 세워진 호랑이들이 기웃거린다. 허름한 한옥의 시멘트벽에는 호랑이가 곰방대를 들고 토끼가 붙여준 불로 담배를 빨고 있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예부터 정월이면 호랑이와 까치, 그리고 소나무가 함께 그려진 그림을 대문에 붙여놨다. 이름하여 ‘호작도(虎鵲圖)’다. 하필이면 신년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와 까치, 소나무일까. 호랑이는 범을 뜻하는 표(豹)와 ‘고할 보(報)’의 중국식 발음이 같다. 고로 범은 ‘알리다’는 뜻이고, 까치는 알다시피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다. 여기다가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은 ‘보낼 송(送)’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호작도를 들여다보면 호랑이와 까치, 소나무가 어우러져 ‘나쁜 것을 보내고 기쁜 소식이 오는 새해’라는 의미로 읽히는 것이다. 복호동에 들러 호랑이 그림을 찾아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해학 넘치게 그려진 호랑이에게서 어쩐지 상서로운 새해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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