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919년 3월 1일 한국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인 3·1운동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약 한달 앞선 같은 해 2월 8일 도쿄에서 선포된 2·8독립선언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선언은 일본에 유학하던 한국인 남녀학생들이 당시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에 영향을 받아 결행한 것입니다.
선언은 1918년 12월초 최팔용, 서춘, 백관수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도했습니다.
이들은 이날 도쿄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6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유학생대회를 열고 최팔용이 대표로 낭독한 선언서와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 선언서와 결의문은 이광수가 작성했습니다.
이어 일본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하려다가 일본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습니다.
이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해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만국 앞에 독립됨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2·8독립선언서'를 통해 한일합방이 한국민 뜻에 반하는 것인 만큼 일본이 한국을 독립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 미국과 영국은 일본의 한국합병을 솔선 승인한 죄가 있으므로 속죄 의무를 지고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우리 민족이 생존을 위해 자유행동을 취해 독립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4개항으로 된 결의문은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하고 요구가 실패될 때는 일본에 대해 영원히 혈전을 벌이겠다는 내용 등으로 돼 있습니다.
일본 경찰은 주동자 60여명을 체포했는데, 그중 최팔용 등 9명은 방청이 일절 금지된 재판에서 출판법 위반죄로 3개월~1년의 금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8독립선언은 이내 국내 민족지도자와 학생들에게 알려져 3·1운동을 일으키는 한 계기가 됐습니다. 다수의 유학생은 귀국해 3·1운동에 합류하거나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앞서 같은해 2월 1일 만주 지린에서는 만주와 연해주,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중인 독립운동가 39명 명의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는데요. '무오독립선언서'로도 불린 선언서는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선포한 독립선언서입니다.
선언서를 기초한 조소앙은 선포 직후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을 지도해 2·8독립선언을 하도록 했습니다.
유창엽 기자 박상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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