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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와 만난 선지.. 아침 해장에 딱이지

부동산 분양정석 2022. 2. 24. 10:55

신선한 내포와 선지, 우거지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내는 솔모랑해장국의 선지해장국. 뜨끈한 선지해장국 한 그릇은 숙취 해소에 그만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선짓국 & 피순대

철분 풍부한 저지방 고단백질

변비 유발하는게 유일한 단점

섬유소 많은 우거지 넣어 보완

순대에 선지만 채워넣은 피순대

푸딩처럼 고유의 부드러운 맛

내장·머리 고기와 세트 맛보기

고기를 먹는 육식이 반드시 살코기를 먹는 걸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선지를 먹는 것도 당연히 포함한다. 호불호가 강한 식재료라 인상부터 찡그릴 수도 있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가축의 혈액으로 만든 우리 선짓국이나 피순대는 굉장히 저변이 넓은 음식이다. 외국에서도 많이 먹는다. 우리말로 선지, 중국어로 셴쉐(鮮血), 영어로는 블러드 푸딩(Blood Pudding)이라 부르며 많은 음식의 재료로 쓰인다.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일상식으로 선지를 먹었다. 혈액에 곡식을 섞어 끓여 먹거나 창자에 넣어 굳혀 먹는 용도로 썼다. 기원전 700여 년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피를 채운 염소 창자 소시지가 결투의 승자에게 주는 상(賞)으로 등장한다. 선지를 채운 소시지(순대)가 당시에 꽤 좋은 음식이었다는 방증이다.

육식 역사가 짧은 일본에는 선지 요리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가축을 많이 키우는 중국과 몽골에는 그 종류가 많다. 중국 남부 후난(湖南)성과 광둥(廣東)성 등지에는 미쉐까오(米血고), 야쉐까오(鴨血고) 등 돼지나 오리 피에 곡물가루를 사용한 음식이 있다. 반면 이슬람과 유대교에선 피의 식용을 철저히 금하기 때문에 할랄과 코셔에는 이를 이용한 음식이 전혀 없다.

우리는 선지와 순대 형태로 자주 먹는다. 선지는 혈액에 소금을 넣어 젤라틴처럼 굳힌 것이며 처음부터 순대에 넣어 익히기도 한다. 선지란 이름은 피를 뜻하는 만주어 ‘셍지(senggi)’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셍지 두하(senggi duha)는 피와 창자란 뜻으로 훗날 순대의 어원으로 알려졌다.

괜히 귀한 것에 ‘피 같은’이란 표현을 쓰는 게 아니다. 편견(?)과는 달리 선지는 영양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음식이다. 값싸고 질 좋은 육식 재료다. 당연히 철분이 풍부하고 비타민, 칼슘, 칼륨 등 우수한 무기질 성분을 다량 함유했다. 저지방 고단백질 식품임은 당연하다. 한 가지 단점이라고는 콜레스테롤이 높고 변비를 유발하기 쉽다는 것인데, 우리 선조들은 선짓국에 섬유소가 많은 우거지를 넣는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냄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순대에도 곡식이나 채소를 썰어 넣으니 제대로 궁합이 맞는다.

소와 돼지의 선지를 모두 사용하며, 소 선지로는 국을 끓이고 돼지 선지로는 주로 순대를 채운다. 돼지 선지라 하면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실제로 많이 쓰고 있으며 보통은 구분하기 힘들다. 오히려 돼지 선지 쪽이 특유의 ‘쇠 냄새’ 같은 향이 덜 난다. 원래 예전에는 피를 쓰는 음식이 훨씬 더 많았지만 요즘은 이 두 가지 음식이 대표적이다. 선지의 식감은 부드럽고 찰기가 있으며 신선할수록 냄새가 나지 않으며 존득하다.

선짓국은 전국적으로 많이 먹는 피 요리다. 피를 굳혀 묵처럼 만든 선지를 푸성귀와 함께 끓여 고깃국처럼 먹는다. 살코기를 함께 넣기도 하고 아예 선지만 넣어도 충분하다. 선지를 넣은 우거짓국은 보통 아침 해장국의 대표 메뉴로 알려졌다. 선짓국은 고깃국보다 시원하고 위에 부담을 주지 않아 해장에 딱이다. 술을 깨는 데 필요한 수분 공급과 단백질, 칼륨, 칼슘, 철분 등을 다량 함유해 일상식으로도 좋다. 비타민 B가 많아 피부에 좋은 데다 열량까지 낮아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란 소문이 나 여성들도 찾아 먹는 이가 꽤 많은 메뉴다. 고추기름을 넣고 칼칼하게 끓이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은 맑은국으로 내는 집도 있다. 소고기뭇국처럼 맑게 끓인 선짓국은 경기와 강원 지역에서 많이 쓰는 레시피다.

선지를 쓴 또 다른 메뉴인 순대는 국내 지역별로 다양하게 발달했지만 호남 지역의 순대에는 거의 선지만 채워 넣은 ‘피순대’가 있다. 특히 전주와 곡성, 순창 등 호남 중북부 지방에서 즐겨 먹는다. 피순대는 글자 그대로 소창이나 대창에 선지를 꽉꽉 채워 넣고 삶아낸 순대로서 선지 고유의 부드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정말 푸딩처럼 씹을 필요 없이 스르륵 삼킬 수 있다. 호남에선 피순대를 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피순대와 내장, 머리 고기 조합은 농후한 풍미와 식감의 대비가 좋아 세트로 맛보기에 좋다. 아바이순대와 당면순대 등 일반적인 순대에도 기본적으로 선지가 들어가며 순대 소의 색이 짙을수록 선지를 많이 넣은 것이다. 순대나 선짓국을 와인이나 녹차 등 타닌을 많이 함유한 음료와 함께 먹으면 별로 좋지 않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고 타닌이 선지 속 철분을 흡수하기 어렵게 하는 탓이다. 궁합이 좋은 음식은 섬유질이 많은 우거지, 나물, 현미밥, 무화과 등이다.

요즘은 국내 수제 샤퀴테리아(Charcuteria)에서도 정통 방식으로 만든 소시지를 구입할 수 있지만 내용물이 거의 선지만으로 이뤄진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살코기 위주 제품과는 달리 유통방식과 기한에 어려움이 있어 그렇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우리에겐 블랙푸딩과 거의 유사한 형태와 내용의 피순대가 있잖은가. 게다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원한 국물의 선짓국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몸에도 좋고 미각까지 자극하는 부드럽고 존존한 선지 음식이라면, 누군가로부터 뱀파이어 취급을 받더라도 그리 불편하지 않을 일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청진옥 = 1937년 개업한 해장국집이다. 신선한 내포와 선지를 넣고 고아낸 ‘청진동식 해장국’이란 말을 탄생시킨 곳. 국물이 그리 맵지 않고 시원한 맛을 낸다. 해장국에 들어가는 선지는 직접 굳혀 쓴다고 한다. 유난히 존득한 식감이 좋아 이 집 선지만 찾는 이도 많다. 서울 종로구 종로3길 32. 1만 원(보통), 1만2000원(특).

◇병곡순대 = 직접 만든 피순대를 낸다. 거의 겔(gel) 타입에 가까운 선지를 얇은 창자 속에 가득 채웠다. 베어 물지는 못한다. 그대로 집어 한입에 쏙 넣으면 짭조름한 선지가 팥죽처럼 입안에 흩어진다. 경남식 돼지국밥을 머리 국밥 이름으로 팔고, 따로 피순대를 판다. 함양군 함양읍 중앙시장길 2-27. 1만 원.

◇순대실록 = 순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순대 요리를 내는 집. 모든 순대는 직접 만들며 당면순대부터 아바이순대, 소시지와 닮은 순대스테이크 등이 있다. ‘팽우육법’ 메뉴는 17세기 문헌을 바탕으로 한우와 소 창자에 소 선지를 넣어 재현한 피순대다. 이탈리아식 순대 디저트인 산귀나치오 돌체를 재해석한 순대 초콜릿도 판다. 서울 종로구 동숭길 127. 팽우육법 3만 원, 순대 초콜릿 1만5000원.

◇부민옥 = 육개장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원래 대표 메뉴는 선짓국이다. 소양과 사태를 오랜 시간 고아낸 육수에 잘 손질한 우거지와 큼지막한 선지 덩어리를 넣고 팔팔 끓여낸다. 정통 서울식 선짓국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하니 시원한 맛에 먹는다. 매일 받아오는 선지 상태가 좋아 냄새가 안 나므로 선짓국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딱이다. 서울 중구 다동길 24-12. 9000원.

◇청화옥 =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열광하는 순댓국집. 젊은층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피순대는 아니지만 당면순대에도 선지가 충분히 들어 감칠맛을 책임진다. 잘되는 집답게 순대 피는 탱글탱글하고 속은 고소한 맛이 난다. 진한 육수 안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는 순대 맛이 인상적이다. 본점은 송파 쪽인데 강남과 을지로에 직영점이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 110 1층 1호. 모둠순대 2만3000원.

◇솔모랑해장국 = 신선한 내포와 선지, 우거지를 잔뜩 넣은 해장국으로 입소문 난 집. 칼칼하니 매콤한 국물에 꾸미가 든든하게 들었고, 해장국집답게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니 가평과 서울을 오가는 이들의 한 끼 식사로 안성맞춤이다. 부드러운 선지가 쫄깃한 내포 식감과도 딱 어울린다. 골퍼들에겐 곱창전골도 유명하다. 가평군 설악면 음방아랫말길 21. 9000원.

◇고바우집 = 원주를 대표하는 해장국집이다. 탱글탱글한 선지가 일품인데, 원하면 무한정 가져다 먹어도 된다. 시원한 국물에 내포와 선짓덩이가 그득 들었다. 보기에도 신선한 선지가 존득한 맛을 내 많은 이가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운다. 토렴하지 않은 ‘따로 해장국’으로 판매한다. 원주시 장미공원길 68. 따로 해장국 9000원.

◇2대째 순대집 = 두툼한 대창에 선지만 가득 채운 전라도식 피순대를 판다. 지역민들에게 인기가 많아 장날이든 평일이든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창은 씹는 맛이 좋아 속에 부드러운 선지만 채워 넣어도 식감 대비가 좋다. 한 번에 툭 터지는 선지와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을 뿜는 대창이 조화를 이룬다. 순창군 순창읍 남계로 58. 8000원. 새끼보 4만 원.

◇곡성 한일순대국밥 = 얼마나 신선한지 선지가 아예 진한 선홍색을 띤다. 직경 굵은 순대를 탄탄하게 채운 선지가 초콜릿 크림빵처럼 부드럽게 입맛을 자극한다. 순댓국 한 그릇만 주문해도 건더기가 푸짐해 별다른 메뉴가 필요 없을 정도. 우거지를 넣고 끓여낸 국물도 시원하고 끝까지 고소한 맛을 내 밥을 말아 후루룩 넘기면 잘도 넘어간다.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218. 7000원.